[뉴스토마토 이보라·배한님 기자] "온누리상품권이 많이 쌓여 있네요? 이거 다 누가 사 가나요?"
"필요한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많이 찾아와요. 여기(남대문)서 물건 사러온 사람들이 주로 많이 사 가지."
온누리상품권 특별판매가 시작된 이튿날인 22일 남대문 지하상가. 상품권 판매소에서는 온누리상품권이 즐비했다. 한 중년 남성이 상품권교환소에 들어와 익숙한 듯 상품권 한웅큼을 건네자, 지폐 계수기가 빠르게 돌아갔다. 판매소 직원의 말에 따르면 쌓여 있는 상품권 대부분은 약간의 이윤을 붙인 가격에 다시 판매돼 남대문 상가 내에서 주로 유통된다고 한다.
이날 이곳 기준으로 교환비율은 1만원에 9230원. 온누리상품권 100만원어치를 가져가면 현금 92만3000원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온누리상품권 특별판매를 활용해 100만원어치 상품권을 구입하는 데 드는 돈은 90만원이니 2만3000원이 남는 셈이다. 이 판매소 직원은 "어제까지 92만원이었는데 오늘 3000원 더 붙었다"라고 했다.
남대문 지하상가의 다른 상품권 판매소 5곳 모두 온누리상품권을 취급하고 있었다. 교환비율은 제각각. 1만원 상품권을 기준으로 적게는 9150원에서 많게는 9300원까지였다. 기자가 상품권 거래소 앞에서 망설이자 9350원까지 쳐준다는 곳도 있었다. 사람들이 제일 많은 곳은 가격을 제일 잘 쳐주는 곳이다.
추석기간 최대구매한도인 100만원 상품권을 90만원으로 구매해서 남대문 지하상가에 가져가면 현재 93만5000원까지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3만5000원을 벌 수 있다. 물론 불법이다.
정부는 올해 총 4조원어치의 온누리상품권을 발행할 예정이다. 할인율(10%)도, 1인당 구매한도(100만원)도 역대 최고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서민 경제를 살리고자 내놓은 고육지책이다. 하지만 특별판매 시행과 함께 온누리상품권의 고질적인 문제인 '상품권깡', 부정유통 우려가 함께 고개를 들고 있다.
전국 곳곳 판매기관서 품절 조짐…대부분 100만원 꽉채워 구입
22일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온누리상품권은 지난 21일부터 오는 29일까지 할인판매율은 기존 5%에서 10%로, 개인별(월별)할인구매한도는 기존 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상향 조정돼 판매된다. 코로나 여파를 극복하기 위한 차원에서 정부는 올해 4월 이후 다시 최대할인율, 최대규모 판매에 나섰다.
역대급 온누리상품권 할인으로 사재기열풍도 되살아날 조짐이다. 판매가 시작된 21일부터 일부 은행 지점들의 상품권 재고가 소진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SNS에서는 온누리상품권을 구입하러 갔지만 벌써 재고가 소진됐다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개인구매한도 최대치인 100만원까지 구매하는 이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날 둘러본 남대문 소재 주요 은행들에서도 개장시간부터 100만원을 꽉꽉 채워 구입해가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물론 전통시장 활성화라는 정책 목적에 맞게 상품권을 사는 사람도 있다. 지난 21일 온누리상품권을 구입했다는 서울 강서구에 사는 60대 주부는 "할인율이 10%라서 100만원어치를 미리 구입했다"면서 "시장서 이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현금으로 되팔기 위해 사재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한 은행에 고객들이 줄지어 서있다.(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연관이 없습니다) 사진/뉴스토마토
소진공 "일련번호 추적 통해 부정유통 근절…남대문 점검할 것"
'부정유통' 문제는 중기부 측도 인지하고 있다. 현재와 같이 명절을 앞둔 시점 상품권 특별할인 기간에 지인이나 친척 등을 동원해 상품권을 대리구매한 후 물품 구매 없이 바로 상품권 판매상이나 상인회를 통해 환전하는 방법이다. 대형 백화점 앞에 위치한 상품권 업자 중 일부는 온누리상품권을 취급한다. 이들은 일반 소비자를 통해 상품권을 사들이고, 가맹점주와 결탁해 이를 다시 환전하는 식으로 부당이득을 올리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불법적으로 이용하는 시장 상인도 적지 않지만 일반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온누리상품권 되팔기'는 이미 유명한 '용돈 마련 꿀팁'이다. 4인가족을 동원해 최대구매치씩 구매하고 되팔면 일인당 최소 1만~2만원씩 남길 수 있어, 합치면 4만~5만원까지 버는 게 가능하다. 직접 상품권을 구입하지 못하는 가맹점주가 지인이나 가족을 동원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양상이라 볼 수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불법현금화 규모는 1087억원으로 전체 상품권 회수액의 24.5%에 달한다.
이러한 부정유통을 막기 위해 소진공은 자체 TFT을 구성하고 전국 상인회를 중심으로 근절에 나서고 있다. 상품권의 일련번호 추적으로 이상환전 내역을 조사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 '강제 수사권' 이 없어서 현실적으로 이를 단속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소진공 관계자는 "상품권 부정유통은 시간은 걸리지만 일련번호 추적으로 이상징후를 포착해 수사를 의뢰하고 있다"면서 "추석기간 특별 계도와 단속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보라·배한님 기자 bora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