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노벨 광시곡

입력 : 2020-09-28 오전 10:05:55
10월도 되지 않았는데 언론은 벌써 국내 과학자의 노벨상 유력 소식을 알린다. 한국처럼 노벨상에 열광하는 나라도 드물다. 집착에 가까운 이런 반응을 보면, 아직까지 우리에겐 과학에 대한 서구 컴플렉스가 남은 듯 싶다. 20세기 초, 서양에 유린당한 동아시아의 지식인들은 서구 체제의 우월성이 민주와 과학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중국 공산당의 창립자 천두슈는 데선생과 과선생, 즉 민주와 과학만이 새로운 중국의 대안이라 외쳤고, 해방공간의 조선 지식인들은 과학조선이라는 새로운 국가를 추구했다. 한국의 노벨상 집착에는 오랫동안 지속된 서구에 대한 동아시아의 컴플렉스가 녹아 있다.
 
노벨상 뉴스는 연예계 뉴스와 결이 같다. 과학에 관심 없는 미디어가 1년에 딱 한번 과학을 연예계 뉴스처럼 다룰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연예계 뉴스는 미디어를 뜨겁게 달구지만, 대부분 짧게 소비되고 만다. 노벨상도 마찬가지다. 독자들 중에 작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의 이름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심지어 생물학자인 나조차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노벨상은 과학계의 가장 큰 쇼비즈니스 행사다.
 
물론 노벨상엔 권위가 있다. 하지만 진짜 심각한 문제는 그 가짜 권위에서 비롯된다. 노벨상이야말로 과학의 진정한 사회적 가치와 의미를 훼손하는 쇼에 가깝기 때문이다.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과학자는 전체 과학자 중에서, 운 좋게 유행하는 과학에 종사했던 극히 일부다. 이렇게 소수의 운좋은 엘리트에게 주어지는 상에 권위가 생기려면, 노벨상 덕분에 과학이 더욱 건강하게 발전하고, 인류가 더 행복해진다는 근거가 필요하다. 바로 그게 죽은 노벨의 유언이기도 했다. 하지만 노벨상을 탄 과학자 대부분은 노벨상이 없어도 연구했을 사람들이다. 게다가 인류를 행복하게 만드는 건 노벨상이 아니라 노벨상을 탄 연구일 뿐이다. 즉, 노벨상이 없어도 노벨상을 받은 연구의 가치는 훼손되지 않는다. 노벨상의 권위는 작위적이다.
 
노벨상은 오히려 과학의 건강한 발전을 해친다. 우리는 교육의 과정에서 1등만 추켜세우는 문화가 만들어낸 괴물을 최근 목도했다. 제도권에서 항상 엘리트였던 한국의 의대생과 전공의들에게, 사회적 공공성은 무의미한 가치였다. 노벨상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승리한 엘리트 과학자에게 수여된다.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연구의 사회적 가치 따위를 고민할 시간은 없다. 노벨상 수상자 대부분은 사회와 고립된 채 자신만의 상아탑에서 경주마처럼 연구에만 몰두했던 과학자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들의 연구결과가 인류의 번영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적 가치를 외면한 과학은 우리 삶을 유린한다. 담배회사의 돈을 받고 흡연의 무해성을 주장한 과학자에서 가습기 소독제의 유해성을 묵인한 과학자까지, 우리 삶에 연결된 과학은 오히려 노벨상의 반대편에 위치한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제임스 왓슨은 몇 번에 걸쳐 흑인을 인종적으로 비하했다. 그의 연구는 분명 분자유전학의 발전에 기여했지만, 생물학자 모두가 왓슨 같은 인종차별주의자였다면 여전히 우생학이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을것이다.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제라드 무루는 여성 연구원들에게 핫팬츠를 입히고 연구소 홍보동영상을 찍으며 물리학계의 오래된 남성우월주의를 드러냈다. 실제로 노벨상은 서구 선진국의 남성 과학자에게 주로 시상된다. 노벨상 자체가 오래된 과학계의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드러낼 뿐 아니라, 아예 그런 현상을 고착화시키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노벨상은 정치적으로 건강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자신에게 드리워진 ‘죽음의 상인’이라는 낙인을 지우기 위해, 기껏해야 엘리트 과학자에게 주는 상 따위를 급조한 노벨의 유치한 생각에, 우리가 지금까지 열광할 이유는 없다.
 
한국처럼 민주적 체제를 지키며 코로나19의 방역에 성공한 나라는 없다. 과학 선진국 미국도, 동아시아에서 노벨상을 가장 많이 수상한 일본도, 심지어 노벨상을 시상하는 스웨덴과 노르웨이조차 코로나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노벨상의 숫자와 코로나19의 과학적 방역 사이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한국의 방역을 과학적으로 성공시킨 정은경 청장도, 미국의 독재자 트럼프에 맞서 미국의 과학적 방역을 지켜내고 있는 파우치 소장도,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고 있는 수 많은 과학자 누구도 노벨상을 받지 못할 것이다. 노벨상은 우리 삶을 지키는 과학에 주어지는 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10월이 되면 한국은 노벨 광시곡에 빠져 허우적 거릴 것이다. 이 유치함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Woo.Jae.Kim@uottawa.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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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