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거짓세상에서 마주하는 현실세계

입력 : 2020-10-08 오전 6:00:00
TV를 즐겨본다. 오랜 기간 많은 시간을 TV 시청에 쏟은 결과, ‘1만 시간의 법칙’이 이런 데도 통하는지, TV를 보며 무언가 느끼는 것들이 있다. 경제와 담쌓고 살던 사람이 주식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가까운 미래를 내다보게 된 것처럼, TV 예능에서 조금 이른 현재를, 드라마에서 무르익은 현재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단순히 예능, 드라마 보는 것 갖고 거창하게도 표현한다 말하겠지만, TV를 통해 세상을 볼 수 있는 건 시청자와의 공감을 매우 중시하고 반영하는 매체의 특성 때문이다. 
 
프로그램 제작진에게 목숨과도 같은 시청률을 잡기 위해서는 예능은 젊은 트렌드를 좇으며 호기심과 재미를 자극해야 하고, 드라마는 다수가 관심 가질 소재를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려내야 한다. 예능은 시청자의 관심을 따라 길을 내는 성격이 있는 반면 드라마는 시청자의 공감대 위에다 이야기를 짓는다. 그래서 예능이 이른 현재이고, 드라마는 충분히 완숙된 현재인 것이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비밀의 숲’ 얘기를 해보자. 전작이 큰 화제를 모아 시즌2가 제작 방영됐고, 시청자들은 벌써 시즌3를 고대하는 분위기다.   
 
복잡하게 얽힌 플롯으로 가득한 이 드라마를 억지로 한줄 요약한다면, ‘굴복하지 않는 검사의 정의구현’ 정도가 적당할까?
 
재미있는 것은 ‘굴복하지 않는’을 시청자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장치다. 주인공 황시목(조승우 분) 검사는 어릴 적 뇌수술 후유증으로 감정이 없다. 희로애락을 느낄 수 없으며 공포심도 없다. 그러니 부장검사, 차장검사의 부당한 지시를 덤덤한 표정으로 거부한다. 이렇게라도 설정하지 않고서는 검찰조직 안에서 황 검사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없다는 반증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시즌에서는 수사권을 두고 벌이는 검찰과 경찰의 갈등을 소재로 삼았지만, 결국 작가는 다룰 수 있는 한계선 앞에서 멈춰섰다. 검찰이나 경찰 모두 자기 상처는 감춘 채 상대를 흠집 내기에만 급급하다는 것, 황시목 검사와 한여진 경감으로 대변되는 본분에 충실한 사람만 있으면 두 권력집단이 수사권 때문에 갈등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올해 초에 방영된 ‘검사내전’이란 드라마가 있었다.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김웅 전 검사의 원작소설을 극화한 것으로 권력과는 거리가 먼 직장인 검사들의 일상을 따뜻하게 그려 호평을 받았다.   
 
황시목 검사와 ‘검사내전’ 속 검사들의 공통점이 있다. 지방 소도시에서 근무한다. 이런 생활형 검사들은 지방에 있어야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모양이다. 검찰이 쌓아온 이미지 때문이겠지만 서울중앙지검, 대검을 배경으로 한 ‘검사내전’은 영 어색하다. 
 
드라마는 생판 허구의 이야기지만 시청자가 충분히 공감하는 현실을 배경으로 한, 눈높이에 맞는 거짓말이다. 
 
“진리를 좇아 매진하는 것, 도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 이는 모두 끝이 없는 과정이다. 멈추는 순간 실패가 된다. 변화를 향해 나아간다는 건 나의 발이 바늘이 되어 보이지 않은 실을 달고 쉼 없이 걷는 것과 같다. 한 줌의 희망이 수백의 절망보다 낫다는 믿음 아래 멈추지 않은 마음으로 다시!”
 
‘비밀의 숲’ 전편에서 검찰을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밑거름이 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던진 인물의 대사다. 검찰 구성원들에게 남긴 유언이었는데, 드라마·영화 작가들에 의해 이 시대 악의 축에 포함된 기자가 읽기에도 가슴 뜨끔한 경구였다. 검사도 아니고 기자가 아닌데도 뜨끔했다면 당신에게 한 말인 것도 맞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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