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명의로 어촌계장이 보낸 새우젓, 공무원이 직접 뇌물 받은 것"

대법 "받은 사람은 공무원이 보냈다고 인식…제3자 아닌 공무원 이익으로 봐야"

입력 : 2020-10-12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지인들에게 새우젓을 보내주겠다'는 어촌계장의 제안을 받은 도청 수산과장이 자신의 이름으로 새우젓을 보내도록 허용했다면, 수산과장이 직접 뇌물을 받은 것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경기도청 공무원 A씨와 어촌계장 B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되돌려 보냈다고 12일 밝혔다.
 
대법원 청사 전경. 사진/대법원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어촌계장은 수산과장이 지정한 사람들에게 수산과장의 이름을 발송인으로 기재해 배송업체를 통해 배송업무를 대신해줬을 뿐이라면, 새우젓을 받은 사람들은 새우젓을 보낸 사람을 어촌계장이 아닌 수산과장로 인식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어촌계장과 수산과장 사이에 새우젓 제공에 관한 의사의 합치가 존재하고 이를 수산과장이 양해했다고 보인다"며 "그렇다면, 어촌계장의 새우젓 출연에 의한 수산과장의 영득의사가 실현된 것으로 형법 129조 1항의 뇌물공여죄 및 뇌물수수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공여자와 수뢰자 사이에 직접 금품이 수수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이와 달리 볼 수 없다"면서 "원심이 인용한 대법원 판결은 공무원이 뇌물을 건넨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뇌물을 공여하도록 한 경우(제3자뇌물죄)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사안이 달라 이 사건에 원용하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경기도청 수산과장이었던 A씨는 2013년 11월 김포 어촌계장 B씨로부터 '선물 할 사람이 있으면 새우젓을 보내주겠다'고 제안을 받았다. 도청 수산과장은 도내 각종 수산업 관련 지방보조금 지원과 배정, 불법어로행위 단속 등에 대한 직무상 권한이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업무상 이해관계가 있었다. 또 당시에는 김포 지역 어민과 강화 지역 어민의 젓새우 조업구역과 조업방법에 대한 분쟁이 있었다.
 
제안을 받은 A씨는 수산과를 통해 퇴직한 경기도청 수산과 공무원, 경기도의회 의원, 해양수산부 공무원 등이 포함된 329명의 명단을 뽑아 전달했고, B씨는 A씨 명의로 이들에게 개당 7700원짜리 새우젓을 보냈다. 2014년 같은 시기에는 A씨가 직접 받을 사람의 명단을 추가해 B씨에게 보내기도 했다. 이후 B씨는 뇌물공여, A씨는 뇌물수수 혐의로 함께 기소됐다. B씨는 아들 이름으로 수산업경영인 육성자금을 위법하게 지급받고, 수산물 포장재 지원 명목으로 지자체에서 보조금을 지원받은 뒤 점포 사용료 등으로 쓴 혐의도 함께 받았다.  
 
1심은 두 사람의 죄를 모두 인정해 B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A씨에게는 벌금 1000만원을 각각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이들의 뇌물죄를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사회통념상 329명이 새우젓을 받은 것을 A씨가 직접 받은 것과 같이 평가할 수 있는 관계라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검사가 상고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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