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50주년’ 조정래 “코로나19는 인간 탐욕과 이기심이 만든 대재앙”

“비극 그치지 않으면 인류 결국 멸망…마지막 장편 인간 본질 탐구”
태백산맥-아리랑-한강 30년 만에 첫 정독 “새로움 창작해야는 숙명 때문”
노벨문학상 “가장 정치적인 상” 친일파 청산 위해 “반민특위 부활해야”

입력 : 2020-10-12 오후 4:48:41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코로나19는 대재앙입니다. 대량 소비와 대량 폐기를 미덕으로 삼아온 인류 활동의 소산입니다. 이번 기회에 조금 더 가난해지더라도 인류는 조금 더 겸손해지는 생활태도, 철학적 가치관을 갖는 계기가 되기를 저는 바랍니다.”
 
12일 조정래 작가(78)가 코로나19가 집필 방식, 작품 세계관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향후엔 어떤 영향을 미칠 것 같은가하는 본보 기자 질문에 답변 중 이 같이 말했다. 이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등단 5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코로나 전에도 지구 환경과 인간 탐욕에 대한 주제는 안타까움을 갖고 살펴왔다는 그는 코로나는 결국 인간과 전 세계가 이기적으로 살아온 결과를 보여준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500년 전 현인들은 탐욕을 버리라, 탐욕이 너를 망칠 것이다, 하지 않았습니까. 탐욕이 인류를 망치고 있는 상황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 비극이 그치지 않는다면 결국 인류는 멸망할 것입니다.”
 
등단 50주년을 맞은 작가 조정래. 사진/해냄출판사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천년의 질문등 굵직한 장편을 집필한 조정래 작가는 한국 문단의 거목이다. 1974년 첫 소설집 황토를 출간한 이래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와 사회 등 묵직한 주제를 반죽하듯 주무르며 소설을 써왔다. 코로나19로 달라진 일상은 50년 작가 생활을 해온 그에게도 전례 없던 사태일 터.
 
소설은 현실의 형상화고, 당대 의식을 반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줄곧 이야기해온 그는 이날 코로나19 사태와 연관해 코로나 시대의 비극 같은 장면을 이미 천년의 질문에서 인류의 재앙으로 묘사한 바 있다. 생에 마지막이 될 장편 작품은 여기서 더 나아간 인간 본질에 대한 탐구가 될 것이라 했다. 정확히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망하고 이를 또 불교적 관점의 내세와 연관시킨 장편소설을 5년 뒤 낼 계획이다.
 
지난해와 올해는 등단 50주년을 기념해 자신이 펴낸 장편들을 돌아봤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아리랑), 6·25전쟁과 분단(태백산맥)을 거쳐 군사독재와 초고속 경제개발 시대(한강)까지 장장 1세기에 이르는 대한민국 민족사를 엮어내기 위해 작가는 마흔부터 예순까지 20년의 세월을 바쳤다. 원고지 51500매의 32, 등장인물만 1200여명. 등단 해에 맞춰 이 대하소설 3부작1년 간 정독하며 개정판으로 펴낸다. 주인공을 바꾸거나 스토리를 수정하는 개작이 아닌 문장을 다듬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자신의 장편을 정자세로 앉아 펼친 것은 출간 30년여 만에 이번이 처음. 그는 예술이 지닌 숙명성 때문이라고 했다. 매순간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는 창작자로서, 그 전 작품의 잔상을 지워야 새 작품을 쓰는 것이 가능했다. 실제로 그의 작품 인물들은 소설 별 성() 조차 겹치지 않는, 서사의 줄기를 이루는 정형성을 확보한 이들이다. “태백산맥은 아리랑의 적이고, 아리랑은 한강의 적이었습니다. 이 잔인무도한 예술가의 길을 걷기 위해 이전 작품들은 거들 떠 보지도 않아야 했습니다.”
 
등단 50주년을 맞은 작가 조정래. 사진/해냄출판사
 
개정판에선 마땅찮거나 석연찮은 문장들을 골라 손질했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수준을 고쳐냈더니 안심이 됐다고. 그는 모든 예술품은 완벽을 위한 몸부림이라 생각한다완벽을 향해 가고자 하는 작가의 진지한 노력으로 봐달라고 했다.
 
50주년 기념으로 조 작가는 홀로 쓰고, 함께 살다도 펴냈다. 남녀노소 관계없는 독자들로부터 100여개의 질문에 답한 문답집이다. 문학에 대한 질문부터 사회와 역사 문제, 작가로서 혼신을 다해온 조 작가의 지난 세월의 편력이 담겼다.
 
조 작가는 이날 간담회에서 “28살 등단해서 2가지 착각 속에 살았다. 하나는 40살일 때 태백산맥을 시작하며 제 나이가 60이 되리라 생각 못했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찬가지로 마흔에 50년 후 78살이 될 것이라 생각 못한 것이라며 세월을 미리 끌어생각하기 보단 열심히 하다보면, 죽는 날까지 글을 쓰다보면 하는 생각으로 집필활동에 전념했다고 소회를 전했다.
 
글을 쓰다 책상에 엎드려죽는 것은 30대 때부터 간직한 소망이었다그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그보다 아름다운 작가의 숙명은 없다고 생각한다. 반세기를 살았으니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하자고 생각해서 이번 개정판과 대화집을 내게 됐다고 밝혔다.
 
378페이지에 달하는 이 문답집에서는 노력이란 키워드를 그는 시종 강조한다. 조 작가는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 통하지 않는 이야기가 됐음을 인정한다면서도 그러나 인생의 성취는 노력 없이는 되질 않는다. 너무 욕심부리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줄기차게 자신의 일을 하다보면 소망하는 길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는 박정희 시대때 유일하게 좋아했던 말이 초과달성이었다며 그 치열성을 사랑한다. 지금처럼 건강 상태가 유지된다며 단편을 한 50편쯤 쓰고 싶다. 명상적 수필을 한 대여섯 권 쓰고 인생의 문을 닫을까 한다고도 덧붙였다.
 
등단 50주년을 맞은 작가 조정래. 사진/해냄출판사
 
친일파와 노벨문학상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전했다.
 
조 작가는 친일파를 단죄해야 한다. 그것이 안 되고는 이 나라의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토착왜구라 부르는 사람들은 일본 유학을 다녀와 친일파, 민족반열자가 됐다. 그들은 일본 죄악에 편을 들고 역사를 왜곡했다. 민족정기를 위해 이제라도 반민특위를 반드시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는 소설 태백산맥에서 500가지 넘게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고 고발당했으며, 11년 간 조사를 받은 뒤 완전 무혐의 판정이 난 경험이 있다그 경험으로 아리랑을 쓸 때에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책을 중심으로 객관적으로 썼다"고도 목소리를 높였다.
 
조 작가는 노벨문학상에 대해서는 가장 정치적인 상이라고 비판하며 나를 비롯한 모든 작가가 노벨상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상을 탔을 때 일본이 엄청 으스댔다. 뒤에 따라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가와바타의 제자인 미시마 유키오라는 군국주의 작가가 스웨덴에 가서 거대한 파티를 수차례나 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그런 파티를 할 (포괄적 의미의) 능력이 없다고 말했다이에 가와바타가 노벨상 수상을 위해 로비를 했다는 뜻이냐고 묻자 그는 그렇다. 심사위원과 가까이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라고 답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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