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무리수' 답습 스가…결국 선거 때문인가

전문가 "지지율 높지만 정치·외교 위기 우려…'외부의 적' 필요"

입력 : 2020-10-13 오후 5:00:00
[뉴스토마토 최서윤 기자] 강제징용 기업 자산 매각이라는 사법부의 조치를 중국도 참여하는 3국 정상급 회의 참석과 결부한 일본 정부의 '몽니'는 최근 베를린 소녀상 철거 문제로도 불거졌다. 한인 시민단체가 진행하는 소녀상 설치에 대해 일본은 관방장관 공개 항의와 외교당국의 물밑 접촉으로 결국 지난 7일 베를린시 미테구청의 철거 명령을 이끌어 낸 것이다. 이에 민간에서 추진하는 일에 정부가 나서 갈등을 조장해선 안된다는 원칙을 준수해 온 한국 외교 당국으로서는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13일 외교가 안팎에서는 일본에 새 내각이 들어선 지 3주 만에 이뤄진 일련의 조치를 두고 스가 총리가 아베 전 총리의 '무리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아베 전 총리는 강제징용 문제를 수출규제라는 경제 조치와 결부해 한일갈등을 극으로 몰았지만, 그 배경으로는 당시 일본 경제 상황과 아베 자신의 정치적 위기가 꼽혔었다. 마찬가지로 스가 총리 역시 현재 처한 정치적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이번 결정을 강행했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미 대선 직후 중국 정상 먼저 만난다는 외교적 부담
 
우선 상대적으로 중국보다는 미국과 외교적으로 가까운 일본이 오는 11월 대선 이후 미국의 외교노선이 변화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중국과 먼저 정상회담을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진창수 전 세종연구소장은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한중일 정상회의가 올해 열릴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해왔다"며 "11월 미 대선이 있기 때문에 연말은 대선 결과에 따라 각국이 어떤 외교정책 스탠스를 정할지 생각해봐야 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진 소장은 "일본도 중국과의 관계를 무조건 좋게 간다면 향후 미국 상황에 따라 엄청난 재앙이 올 수 있다고 본다"면서 "미국의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 중국과 정상회담을 통해 경제문제를 논하고 한중일이 모여 국제사회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부담스럽다는 시각이 원래 일본 내에 있었다"고 했다. 
 
스가 총리, 이달 초 정치적 위기도 겪어
 
스가 총리가 이달 초 겪은 정치적 위기도 배경으로 볼 수 있다. 스가 총리는 최근 '일본 학술 회의'라는 명칭의 국가기관이면서도 일본정부와는 독립된 일종의 싱크탱크 단체 회원 임명에 대해 사상 처음으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총 210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학술회의는 국가기관인 만큼 총리의 임명 절차를 거치지만, 독립성을 강조하기 위해 회원 추천안이 올라오면 총리의 임명은 형식에 그칠 뿐이었다. 그러나 스가 총리가 새로 뽑는 회원 105명에 대해 6명을 탈락시키면서 지식인들의 반발을 샀다고 한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스가 총리의 결정은 '학문의 자유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되고 독재적인 방법을 사용했다는 비난도 있다"며 "야당과 일본 학자들, 학생들이 가세해 임명 거부의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해야 한다며 정부를 공격하고 있다"고 전했다. 
 
선거 준비하는 스가…여론 향방 따라 한국 자극도  
 
결국 스가 총리의 관심은 의회 해산과 선거에 있다는 데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이르면 내년 1월 초로 언급되는 선거 시점을 앞두고 스가 정권이 현재 7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유지하려면 외교적 위기에 대비하고 국내 정치적 난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일 간 대표적 과거사 현안인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국민 여론이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1989년 아사히 신문이 1943년 제주에서 있었던 위안부 강제 연행을 폭로한 다나카 세이지의 증언을 대서특필 하면서 일본 내 사죄 운동이 일어나고 1993년 고노담화까지 발표됐지만, 이후 증언 세부 사항이 사실과 맞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신문이 일주일에 걸쳐 10페이지에 달하는 정정보도를 내보낸 일화가 대표적이다. 
 
최근 윤미향 의원과 정의기억연대 회계부정 의혹 사건도 일본 내 반향이 크다고 한다. 진 전 소장은 "지금 일본에선 피해자와 가해자가 역전된 상황"이라며 "일본인들이 스스로 약속 파기의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프레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2015년 위안부 합의가 사실상 파기되고, 강제징용 배상 소송으로 1965년 청구권 협정까지 한국이 어겼다는 인식이 팽배하다고 한다. 이에 소녀상 설치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 당국이 강력하게 나서주길 원하는 여론이 크다는 것이다. 
 
베를린 소녀상 철거 로비에 이어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 조건을 단 일본 정부의 조치는 궁극적으로 스가 총리가 내년 1월 초로 예상되는 의회 해산과 선거를 앞두고 외교적·정치적 부담을 '외부의 적'으로 돌리려는 전략에 기초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왼)과 스가 총리의 모습. 사진/AP·뉴시스
 
호사카 교수는 "물론 강제징용 현금화 중단 조치가 없으면 스가 총리가 방한하지 않겠다는 것은 장기적이고 실제적인 의사이긴 하다"면서도 "하필 이 시점에 갑자기 말한 데는 정치적 이유가 있다"고 짚었다. 그는 "이르면 스가 총리가 내년 1월 초 선거를 하게 될 것 같은데 12월 방한해 문 대통령과 악수한 뒤 현금화 문제가 현실화 하면 '외교 실패' 책임을 물어 야당이 공격할 빌미가 된다"며 "선거 자체를 생각해도 전략 차원에서 올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이유로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일본 정부가 과거사 문제로 한국을 자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베를린 소녀상 철거명령이 내려진 다음날인 지난 8일 외교부 관계자는 정부의 공식 입장 발표는 아끼면서도, "위안부 문제 사죄 정신에 역행하는 조치"라고 반발한 바 있다. 선거를 앞둔 스가 정부에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형태의 갈등 표면화로 '외부의 적'을 공고히 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서윤 기자 sabiduri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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