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안 그러셨잖습니까. 과거에는 저에 대해 안 그러셨잖습니까."
원망인 듯 시비조로 들리는 이 말은 지난 22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국정감사장에서 한 말이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대한 답변이다. 박 의원이 “너무나 윤 총장을 사랑하는 본 의원이 느낄 때 (윤 총장의 정의는) 선택적 정의라고 생각한다"고 하자 이 말이 돌아왔다.
윤 총장은 박 의원을 쳐다봤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 전체를 싸잡아 한 말로 들렸다. 불과 1년 전 정부·여당은 윤 총장을 '다시 없을 검찰총장'이라고 치켜세웠다.
윤 총장의 말을 듣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올랐다. 노 전 대통령은 대선 출마 전 '구시대의 막내가 될 것인가, 새시대의 맏형이 될 것인가'를 두고 수없이 고민했다. 집권 후에도 이 고민은 그를 끊임 없이 괴롭혔다. 자신에 대해 워낙 박한 성격인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어쩔 수 없는 구시대의 막내'라고 번뇌했을지도 모른다.
국민이, 그리고 촛불정부가 2019년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검찰총장으로 세운 것은 그에게 '새시대 검찰의 맏형' 역할을 맡긴 것이다. 정무감각 없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으며, 살아 있는 권력에 칼을 들이댄 죄로 수년간 좌천됐던 검사의 한이나 풀어주자고 한 일이 아니다. 윤 총장은 이에 대한 고민을 얼마나 했을까.
그의 고민이 깊지 않음은 이번 국감 내내 확인됐다. "검찰총장은 법무부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는 발언은 그 단면이다.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의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윤 총장은 "장관은 기본적으로 정치인이다. 정무직 공무원이다. 전국 검찰을 총괄하는 검찰총장이 장관의 부하라면 수사와 소추가 정치인의 지위에 떨어진다"고 했다.
검찰청법 8조가 '법무부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고 규정한 것은 정권의 검찰 수사개입을 막기 위함이다. 그러나 검찰 수사권을 전횡하는 제왕적 검찰총장을 견제·통제하기 위한 법적 근거이기도 하다. 이 부분에 관한 한 윤 총장의 발언은 장관과 총장의 관계를 '지휘·감독'의 관계로 정립하고 있는 명시적 법규정에 반하는 해석으로 보인다.
더구나 추 장관과 각을 세워 국민이 불안한 상황에서 "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한 것은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변이 아니다. 윤 의원 조차도 장관과 총장의 관계를 물은 것이 아니다. 국감에 참석한 검찰총장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다. 이러니 항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자신의 진퇴 문제를 두고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거론한 것도 신중하지 못했다. 임기 동안 소임을 다 하라는 임면권자의 말을 이행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적절한 메신저'를 통한 지시가 있었다는 발언은 대통령과 검찰총장 사이에 비선라인이 있다는 오해를 부를 수 있다. 매우 위험한 발언이다. '내 뒤에 대통령이 있으니 더이상 흔들지 말라'는 경고로도 읽힐 수 있다.
윤 총장이 정부·여당과 계속 갈등을 겪고 있는 이유는 그가 스스로 '구시대 검찰의 막내'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윤 총장이 '새시대 검찰의 맏형'이기를 거부한다면 임면권자에 대한 불충이고, 대한민국은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다. 추 장관 '지휘'가 불합리하고 위법하더라도 말이다. 임면권자는 이미 한 차례 의중을 보였다.
최기철 법조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