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들숨 하나까지’…2인칭 시점 설계한 샘 스미스

뮤지션 등 뒤 따라가는 카메라…‘실물 스미스’와 교감하듯
런던 애비로드 라이브 “어둠과 슬픔 속에서도 희망 생각하길”

입력 : 2020-11-05 오후 5:33:23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달처럼 노란 조명 아래 첫 들숨 하나로 그는 모든 감정을 뱉어냈다. 자기고백을 담담히, 그러나 아릿하게 토하는 듯한 노래(곡 ‘Young’) 직후. 카메라 앵글은 2인칭처럼 샘 스미스(29) 옆에 바싹 달라붙었다.
 
지난달 31일 샘 스미스 정규 3집 ‘Love Goes’ 발매를 기념해 런던 애비로드에서 열린 실시간 온라인 음악감상회(Live At Abbey Road Studios). 사진/유니버설뮤직코리아
 
시간이 2주 전, 영국 런던 남부 ‘SW 19 스튜디오’로 되감긴다. 우중충한 회색 하늘 아래 스미스가 장비와 각종 짐을 옮기며 공연 팀과 담소를 나눈다. ASMR처럼 달콤하다.
 
카메라는 시종 스미스의 등을 따라간다. 커튼을 두른 스튜디오 내부가 펼쳐진다. 피아노 현의 울림, 합창단원들의 웃음소리가 희미한 그라데이션처럼 채색된다. 스미스의 나레이션이 그 위를 선명한 붓 자국 마냥 훑고 지나갔다.
 
“집 같은 공간이었다. 비누방울처럼 아늑했던…. 우리는 지난 6~7개월 간 이제껏 경험 못한 ‘이상한 세계’를 관통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기에도 음악은 서로를 잇는다. 정서를 나누는 예술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한국 시간으로는 핼러윈 데이였던 지난달 31일. 샘 스미스가 코로나19로 신음하는 세계 시청자들과 만났다. 정규 3집 ‘Love Goes’ 발매를 기념한 실시간 음악감상회(Live At Abbey Road Studios). 
 
지난달 31일 샘 스미스 정규 3집 ‘Love Goes’ 발매를 기념해 런던 애비로드에서 열린 실시간 온라인 음악감상회(Live At Abbey Road Studios). 사진/유니버설뮤직코리아
 
영국 런던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찍은 실시간 공연 영상과 사전 다큐(SW 19 스튜디오 촬영)가 교차 편집된 이 영상에선 흡사 ‘실물 스미스’와 교감하는 환영이 일렁였다. 
 
애비로드 스튜디오는 비틀스 멤버 네 명이 건너 유명해진, 음악계의 그 상징적인 도로 앞 건물이 맞다. 비틀스 외에도 핑크 플로이드, 클리프 리처드 등 ‘전설’들의 숱한 명반이 제작된 곳. 
 
세계 최고급 음향 장비를 두른 이 ‘음악 성채’에서, 지구를 도는 가상의 월드투어가 70여분 간 실시간으로 펼쳐진 셈이다. 
 
이날 애비로드를 “사운드가 완벽한 유서 깊은 ‘음악 메카’”라고 소개한 스미스는 “뮤지션으로서의 완벽한 꿈이 이뤄졌다”며 감격에 젖었다. 또 본 공연을 시작하면서는 “치즈토스트나 와인을 곁들이는 것이 좋겠다”는 재치를 곁들이며 카메라 앞에서 약간은 어색한 표정으로 시청자들과 인사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폐쇄된 ‘공연 국경’을 화면으로 넘는 기분. 애비로드 내부 설치 카메라들은 레일 위를 앞뒤로 달리며 지금 ‘막 찍어낸’ 이 따끈한 라이브를 지구 곳곳에 송출했다. 
 
지난달 31일 샘 스미스 정규 3집 ‘Love Goes’ 발매를 기념해 런던 애비로드에서 열린 실시간 온라인 음악감상회(Live At Abbey Road Studios). 사진/유니버설뮤직코리아
 
오프라인 공연이 중단된 오늘날 온라인 공연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이날 스미스의 애비로드 라이브는 확장현실(XR) 등 막대한 볼거리가 있진 않더라도, 온전히 음악과 음향 등 기본에만 충실한 공연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새삼 절감케 했다.
 
이날 초반부터 무대를 끌고 가는 것은 가깝고 친근한 ‘실존 스미스’였다. 스크린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거니는 스미스의 말과 행동, 노래, 제스쳐가 공연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노래가 끝난 뒤 ‘온에어’ 마이크에 그대로 담기는 대화나 웃음 소리는 ‘백스테이지’에서의 그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줬다. 시각 효과라고는 화면 전체를 물들이는 빨강과 보라, 에메랄드 등의 빛깔 조명 뿐.
 
초반, 스미스의 고혹적 팔세토와 혼성 3인조 가스펠은 펑키한 기타 리프, 통통 거리는 신스를 황금비율로 혼배한 밴드 사운드(‘Diamonds’, ‘Dancing with a Stranger’)에 유려하게 녹아들었다. 
 
무엇보다 역사적 아우라가 있는 공간 특성을 살린 라이브는 그가 왜 ‘21세기를 대표하는 팝계의 목소리’인지를 말해주는 듯 했다. 특히 손으로 부채춤을 추며 1983년 신디 로퍼의 ‘Time After time’을 색다르게 부른 장면은 압권. “힘들어 하는 당신을 시간이 흘러도 잡아주겠다”는 노랫말은 몽글몽글한 공간계 기타음에 실려 오늘날 코로나 시대의 위로송이 됐다. 스미스 자신이 작곡에 참여한 셀린 디온의 곡 'For The Lover That I Lost'는 마치 자신의 발라드인 것처럼 불렀다. 스미스는 이 곡을 마친 뒤 “스코틀랜드 산 꼭대기에서 이 노래를 들었던 아름다운 기억이 있다”고 친구에게 고백하듯 털어놨다.
 
지난달 31일 샘 스미스 정규 3집 ‘Love Goes’ 발매를 기념해 런던 애비로드에서 열린 실시간 온라인 음악감상회(Live At Abbey Road Studios). 사진/유니버설뮤직코리아
 
스미스를 대표하는 전작의 발라드 넘버(‘Too Good at Goodbyes’, ‘Lay Me Down’) 순서 땐 대체로 악기들의 비중을 최소화시키는 구성을 택했다. 이때 흑백으로 처리된 화면 톤은 스미스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끔 하는 효과를 냈다. 현악과 관악 오케스트레이션이 더해져 장대한 드라마틱 구성으로 나아가는 ‘Love Goes'(영국 싱어송라이터 라브린스가 피처링)는 흡사 대성당처럼 음향 공간감을 주는 애비로드 스튜디오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한 무대였다.
 
성소수자로서 아픔을 서정적 음악으로 그려온 스미스는 특히 ‘사랑’에 관한 한 섬세하고 철학적이다. 이번 신보는 사랑과 이별을 주요 테마로 내세워 전작의 결을 이으면서도 후회나 슬픔 보단 ‘관조’에 방점을 찍는다. 이별 후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Kids Again’)를 담담하고 차분하게 풀어내는 식. 공연 4번 째 순서였던 곡 ‘Promises’에 앞서 그는 “애비로드를 게이바로 만들겠다”며 한껏 여유로운 모습도 보였다. 
 
긴밀한 공연답게 마지막엔 팬들과의 질의응답 시간도 마련됐다. “집콕 여파로 독서를 비롯해 새로운 취미를 찾아가고 있다”는 그는 신작에 대해서는 “내 감정에 충실했기 때문에 압박이 덜했고 그래서 더 신나게 풀어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가사적 측면에서 자신을 가장 잘 담아낸 노래로는 ‘Young'을 꼽았다. “어둠과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생각하며 만든 스윗송이죠. 모두의 삶을 축복하고자 한 마음을 담았습니다.”
 
지난달 31일 샘 스미스 정규 3집 ‘Love Goes’ 발매를 기념해 런던 애비로드에서 열린 실시간 온라인 음악감상회(Live At Abbey Road Studios). 사진/유니버설뮤직코리아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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