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등용 기자] "높은 상속세와 증여세가 부담돼 기업을 처분하는 경영자가 많습니다. 장수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제도가 필요합니다."(심승일 삼정가스공업 대표이사)
국내 중소기업계가 과도한 상속세 부담에 경영권을 위협 받고 있다. 중소기업계는 이미 창업 세대의 고령화로 다음 세대로 기업을 승계해야 하는 중요한 전환기에 놓여 있다. 하지만 정부는 부의 재분배를 이유로 상속세 제도를 강화하고 있어 세대를 넘어 영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중소기업의 출현을 막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가업 승계와 관련해 상속인이 부담해야 하는 세 부담은 우리나라가 OECD 국가들 중에서도 높은 축에 속한다. 우리나라 상속세의 최고세율은 50%로 상속세를 부과하고 있는 OECD 국가 평균치인 35.8%보다 14.2%p 높다.
이는 벨기에(80%), 프랑스(60%), 일본(55%) 다음으로 네 번째로 높은 수준이지만 벨기에와 프랑스의 경우 직계 존·비속과 배우자에 상속시 낮은 세율을 적용하고 있어 사실상 일본 다음으로 두 번째로 높다고 할 수 있다.
실제 국내 중소기업계에서도 과도한 상속세 부담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실시한 ‘중소기업 가업승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상당수 중소기업들은 막대한 세금 부담을 가업 승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 지목한 바 있다.
이 같은 과도한 상속세 부담은 중소기업들이 투자 대신 기업 자산을 매각하거나 배당금을 높이도록 하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과중한 상속세 부담과 가업상속공제의 제한적인 요건 때문에 창업주들이 한국 M&A 거래소나 사모펀드에 회사 매각을 의뢰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현 상황을 전했다.
이에 정부도 법률 개정을 통해 세제지원 범위와 혜택을 점차 확대하고 있지만 실효성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이 제기된다. 예를 들어 1997년 도입됐던 가업상속공제 제도는 1억원이었던 공제금액 한도를 2008년부터 확대해오고 있지만, 적용 요건이 엄격해 활용도가 높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에 따르면 가업상속공제를 이용하는 기업은 연 평균 80여개사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제도를 운영 중인 독일에서 연 평균 1만3000여개사가 이용하는 것과 비교하면 1%도 채 안 되는 것이다.
작년엔 사후관리기간 단축과 업종 변경 허용 범위 확대 등을 주요 골자로 한 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이 역시 중소기업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해 직면해 사실상 식물 상태다.
김희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행 가업승계지원제도의 적용 대상을 확대하고 사후관리요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자본이득세 도입 검토를 통해 실현 이익에 대해 과세하는 대신 상속·증여세를 폐지하는 세제 개편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상북도 고령군에 위치한 한 중소기업 산업단지의 모습. 사진/뉴시스
정등용 기자 dyzpow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