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지영 기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KCGI 주주연합의 법정 공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양측이 제각각 정당성 주장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 법원은 이번 인수가 조 회장 경영권 방어를 위한 도구로 쓰였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볼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경영권 방어 측면이 있더라도 이번 합병이 코로나19로 위중한 항공업 재편의 포석이 되는 만큼 이를 고려해 판결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법원종합청사에서 KCGI가 신청한 한진칼 신주 발행금지 가처분에 대해 심문한다. 한진칼이 KDB산업은행에 하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대금 납입일이 다음달 2일인 만큼 이전까지는 결론을 낼 것으로 보인다. 만약 법원이 KCGI의 손을 들어 한진칼이 산은에 신주를 발행하는 것을 금지하면 아시아나항공 인수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
KCGI가 가처분 신청을 한 것은 한진그룹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과정에서 조 회장이 우호 지분을 확보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번 인수는 대한항공 지주사인 한진칼이 산은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하고 지원금을 받은 후 대한항공이 유상증자를 해 나머지 인수 대금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산은은 한진칼 지분 10%가량을 보유하게 되고 이는 조 회장의 우호 지분이 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다가올 정기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은 KCGI 주주연합으로부터 무난하게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다.
핵심 쟁점은 한진그룹이 산은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하는 게 '긴급한 자금조달' 혹은 '사업상 중요한 자본 제휴'에 해당하는지다. 상법 제418조에 따르면 기업은 신기술의 도입, 재무구조의 개선 등 회사의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관이 정하는바'에 따라 주주 외의 자에게 신주를 배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진칼 정관에서는 긴급한 자금조달이나 자본 제휴 등을 위해 신주를 배정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경영권 분쟁 중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왼쪽)과 강성부 KCGI 대표. 사진/대한항공, 뉴시스
이에 따라 한진그룹은 이번 인수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서가 아닌 항공업계 재편을 위한 선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국내 항공업계는 이전부터 출혈 경쟁에 시달리면서 수익성이 급감해왔다. 이에 따라 국내 1~2위 항공사를 합치고 계열사로 둔 저비용항공사(LCC) 세 곳까지 합치면 항공사 수 자체가 줄어 상황이 나아질 것이란 것. 이렇게 수익을 높이게 되면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도 더욱 수월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인 산은 또한 코로나19로 국내 항공산업이 전멸 위기인 가운데 이번 합병이 세금을 가장 적게 투입하면서 항공업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지원 과정에서 총수 일가 지분 일부를 담보로 잡았기 때문에 특혜도 아니라는 주장이다.
반면 KCGI는 이번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긴급한 자금조달이나 자본 제휴 등의 목적보다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증자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인수 자체는 추진할 수 있지만 조 회장이 우호 지분을 얻게 되는 이번 방식은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KCGI는 이날 "한진그룹과 산은은 재판부와 국민을 오도하지 말고 진실을 말해야 한다"며 "진정으로 항공업 재편을 희망한다면 가처분 인용 시에도 다양한 대안으로 항공업 재편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KCGI 주주연합의 지원군으로는 한진칼 소액주주들이 나선 상황이다. 소액주주 모임은 이날 "인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기업 실사 한번 하지 않은 채, 과반 이상의 주주들의 반대를 묵살하며 오직 한 사람의 이익을 위해 속전속결로 밀어붙이고 있다"며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한다고 밝혔다.
김지영 기자 wldud91422@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