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필부지용’ 과 ‘차도살인’

입력 : 2020-12-07 오전 6:00:00
한고조(漢高祖)의 ‘한신’은 처음에는 ‘항우’의 부하로 있다가 그의 인품에 실망하고 ‘유방’을 따라 가게 된다. 처음에 유방은 한신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지만, 하후영(夏侯?)과 소하(蕭何) 등이 그를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것을 보고, ‘사람을 어찌 써야 하는지’를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한신은, “항왕(項王)이 노기를 띠고 한번 호령을 하면 천 명이나 되는 사람이 정신을 잃지만, 어진 장수를 믿고 맡기지를 못합니다. 이것은 필부의 용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항왕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공손하고 인정이 많으며 말하는 것도 부드럽습니다. 사람이 병에 걸렸을 때면 흐느껴 울면서 자기가 먹을 음식을 나누어 줍니다. 그런데 사람을 써서 그 사람이 공이 있어 마땅히 벼슬을 주어야 할 경우가 되면 봉해 줄 벼슬의 직인을 새겨 그를 주려 하다가도 그것을 주기가 차마 아까워 그 직인이 모서리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손에 쥐고 주지 못합니다. 이것은 이른바 부인(婦人)의 인(仁)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즉, 항우의 인간 됨됨이가 ‘필부의 용기밖에 없는, 소인배의 그것’이니 “항왕이 하는 것과는 달리 천하의 무용을 가진 사람을 믿고 써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검찰개혁을 기치로 추미애 장관이 힘차게 휘두르는 철퇴가 윤석열 검찰총장의 만만치 않은 방패에 막혀 아직까지도 누구의 승리로 끝날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추 장관과 윤 총장의 갈등이 1년 내내 계속되면서 온 나라가 어지럽고 국민들이 얼마나 이러한 갈등을 더 견뎌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마도, 이런 상태로 조금 더 지나면 본질은 어딘가로 완전히 사라지고, 두 거인(巨人)들은 ‘좁은 소견으로 혈기만 믿고 함부로 행동하는 필부지용(匹夫之勇)’의 대명사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오늘(7일) 있을 전국 법관회의에서 ‘윤 총장의 판사 사찰’이 안건으로 다뤄지고, ‘헌법상 보장된 법관의 독립이 심히 훼손된 것에 유감을 표한다’는 성명이라도 나오게 된다면 또 다른 반전의 여지가 있을테지만, 우리나라 법관들의 성향은 그러한 ‘안건 회부 자체’를 ‘차도살인(借刀殺人)’의 한 형태로 보고, 자신들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높아서 어찌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방향이다. 오는 10일에 윤 총장에 대한 검사 징계위원회가 있을 예정이지만, 윤 총장 측은 지난 4일 헌법재판소에 법무부 장관이 징계위원까지 임명할 수 있도록 한 검사 징계법 5조 2항 2호와 3호에 대한 헌법소원과, 헌재 판단 전까지 징계절차를 멈춰달라는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상태여서, 징계위가 아예 열리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또, 징계위가 열리더라도 윤 총장 측이 대부분의 징계위원에 대해 기피신청을 할 수도 있고, 헌재가 가처분 신청에 대한 판단을 징계위 개시 전까지 내리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각하시켜 버릴 수도 있다. 결국, 아주 아주 복잡한 법적 프로세스들이 한참 남아 있어, 국민들만 골치 아파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얘기다. 그러는 사이 국민들은 계속해서 분열되고, 민심은 양분되어 검찰 개혁을 둘러싼 본질적 문제 해결은 어디로 가버리고 난장판 싸움만 이어질 수도 있다. 
 
여기에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공수처장 임명 문제가 여야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여당에서는 9일 회의를 열어 법 개정을 통과시키는 쪽으로 실력행사를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국민의 힘과 나머지 야당들의 버티기나 저항이 엄청난 후폭풍으로 몰려올 것이 명약관화하다. 
 
안타까운 것은, 작금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해결방법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 여론의 추이를 볼 때 청와대가 계속해서 모른 척 마냥 뒷짐만 지고 있을 수도 없지만, 윤 총장이 자진 사퇴하지 않는 한, 대통령으로서는 이미 검찰 총장 해임만 빼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는데 어려움이 있다. 
 
기득권의 힘이 세고 그들이 내려놓아야 할 권력들이 매력적일수록, 개혁은 빠르고 강력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중국 전한(前漢) 말기, 당시 사회의 제도적 폐해와 모순을 해결하고자 신 왕조를 열어 개혁 정책들을 실시했지만, 결국 15년 만에 완전 실패로 끝나 버린 ‘왕망’의 슬픈 역사가 의미하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노영희 법무법인 '강남'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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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