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영향력 커지는 장르 뮤지션들, 새로운 'K팝 화풍'

검정치마, 넬…'K팝 프로듀서'로
인디 뮤지션과 손잡는 아이돌 프로듀서들

입력 : 2021-01-22 오후 6:24:28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K팝이 세계 대중음악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면서, 국내 음악계의 지형도가 변하고 있다.
 
록과 재즈, 힙합, 소울 등 소위 '장르 음악'으로 분류되는 음악가들의 K팝 내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주로 직접 곡과 가사를 쓰는 이들은 곡과 앨범 콘셉트까지 결정하는 'K팝 프로듀서'를 자처하기도 한다. 
 
반대로 최근에는 아이돌 음악을 주로 쓰는 K팝 작곡가들이 인디신의 '원석'을 발견하고 프로듀싱하는 흐름 또한 활발하다.
 
서로 다른 '음악 색감'이 섞여, 새로운 'K팝 화풍'이 그려지고 있다. 
 
검정치마, 넬…'K팝 프로듀서'로
 
지난 19일 가수 청하는 싱글 'X(걸어온 길에 꽃밭 따윈 없었죠, 검정치마·클리프 린 공동 작곡)'를 냈다. 멜랑꼴리한 신디사이저 음색 이 울렁이는 첫 소절부터 검정치마(조휴일)의 '인장'이 새겨진 모던 록이다. 베이스와 드럼 기타가 슬로우 템포로 전진하는 곡은 청하의 낭랑한 음색과 뒤섞여 묘한 서정을 그려낸다. 검정치마의 백보컬은 청하의 가삿말을 유령처럼 따라간다.
 
발매 직후 청하가 공개한 인터뷰와 소속사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곡은 검정치마가 직접 콘셉트를 그려낸 것이다. 청하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묘한 철학적 질감의 음악으로 구현해 냈다. 곡 사이로는 마를린 먼로가 남긴 말을 겹쳐냈다. '인생 최저점의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내 호시절 나를 가질 자격 없어요.'(If you don't love me at my worst then you don't deserve me at my best.)
 
이주섭 MNh엔터테인먼트 총괄이사는 본보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제는 아이돌과 뮤지션 간 교류가 이상하거나 낯선 환경이 아닌 것 같다"며 "아이돌 출신의 경우, 협업 시스템은 평소 해보지 못했던 시도로 아티스트의 외연을 확장하는 효과가 있다"고 작업 계기를 밝혔다.
 
청하 새 싱글 'X'. 사진/MHn엔터테인먼트
 
이런 협업 사례가 기존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 범위가 더욱 깊고 활발하게 확대되는 추세다. 과거 여러차례 인피니트 김성규의 솔로 앨범 프로듀서로 나섰던 넬 김종완은 최근 5년 만에 정규 7집('THE PROJECT')을 낸 가수 이승기의 곡 '소년, 길을 걷다'를 프로듀싱했다.
 
이승기의 삶을 전해 듣고 가상의 화자로 분해 직접 쓴 곡이다. 피아노 타건의 울림이 형성하는 공간감 짙은 사운드는 넬이 최근 발표해온 싱글 곡들의 '톤'과도 연결된다.
 
이승기는 직접 김종완의 스튜디오를 찾아 곡 정서에 맞는 가창 스타일을 함께 연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넬의 김종완은 과거 방탄소년단 RM, 태연, 보아, 윤하 등과도 작업했다. 
 
과거 본보 기자와의 대면 인터뷰에서 "오히려 (연습생 시절부터) 오랜기간 꾸준히 자신을 갈고 닦는 아이돌 친구들을 보며 배울 때가 많다. 넬로서 하는 것이 익숙한 바운더리 내에 갇혀 있는 것이라면, 외부 작업은 밖의 색채가 들어오는 것이라 배우는 게 오히려 많다"고 밝힌 바 있다.
 
데뷔 18년차 힙합그룹 에픽하이는 최근 포크뮤지션 김사월을 자신의 앨범에 초대했다. 김사월은 지난 5년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신인’, ‘최우수 포크 음반’ 등 5차례나 수상자로 호명된 송라이터다. 
 
서정적 템포로 흘러가는 선율의 곡 ‘라이카’에 김사월은 투명한 바람을 불어넣듯 노래한다.
 
넬. 사진/스페이스보헤미안
 
인디 뮤지션과 손잡는 K팝 프로듀서들
 
한편으로 기존과는 반대의 흐름도 활발하다. 김사월이 속한 소속사 유어썸머는 최근 부산음악창작소의 프로젝트 일환으로, 케이팝 작곡가들과 신예 싱어송라이터를 연결하는 유통을 맡고 있다. 
 
이 일환으로 세븐틴, EXO 등의 곡을 만들어낸 프로듀서팀 모노트리는 최근 신인 아티스트 수수(susoo)와 손을 잡았다. 팀은 과거 정승환 등의 곡을 작업한 바 있다. 최근 '싹쓰리' 프로젝트로 주목받는 JYP엔터테인먼트의 심은지 작곡가는 싱어송라이터 오느린윤혜린과의 음원을 곧 발표한다.
 
'놀면 뭐하니?'에 등장해 싹쓰리 곡 작업을 한 JYP 심은지 작곡가. 사진/MBC
 
과거 인디신에서도 활동했다는 모노트리의 멤버 황현 작곡가는 전화통화에서 "굳이 신을 나누는 것조차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테크닉적인 것을 제하면 음악을 대하는 자세 만큼은 인디든 K팝이든 작업시 큰 차이가 없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해야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들도 세상에 알려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근 싱어송라이터 오왠도 K팝 작곡가 어깨깡패와 처음으로 협업을 했다. 오왠의 소속사 디에이치플레이의 구자영 대표는 "인디신 가수들은 케이팝 아이돌과 차별화되는 목소리 톤이 있다"며 "K팝 작곡가들 역시 창작자로서 인디신 특유 감성에 맞는 곡들을 쓰다 보면 본인들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반대로 인디 음악가들도 새로운 멜로디의 유입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장르 음악가들의 K팝 시장내 영향력이 늘어나면서, 이들의 기존 음악 스타일에 대한 해외의 관심 또한 점점 높아지고 있다.
 
최근 일본 법인의 아시아 뮤직레이블 비사이드는 'K-인디즈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 인디 음악가들의 7인치 바이닐(LP)을 제작, 일본 시장에 판매하는 프로젝트다. 아도이, 새소년, 웨터, 검정치마, 설, 아월, 썸머소울, 이루리, 윤지영 등이 지금까지 이 프로젝트를 거쳤다. LP들은 일본 오프라인 대형 레코드 유통사 HMV의 장르 부문 차트에서 상위권에 오를 만큼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현우 비사이드 관계자는 "LP 예약 발매가 시작되자마자 상위권에 나란히 올라 있는 것을 보면 깜짝 놀랄 정도"라면서도 "코로나로 쇼케이스든, 공연이든 오프라인 활동이 진행되지 못하는 것은 아쉽다. 조만간 상황이 좋아지고 이 같은 활동이 병행되면 더 좋은 반응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일본 시장에 발표된 한국 싱어송라이터. 썸머소울(위부터), 이루리, 윤지영. 사진/비사이드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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