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욱 변호사가 제96대 서울지방변호사회장으로 당선됐다. 김 신임 회장은 변호사시험(변시) 2회다. 변시 출신 변호사가 제도권 변호사 단체 수장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만 9년 전 처음 법조계로 배출된 변시 출신 변호사들은 말 그대로 삭막한 광야에 내던져진 고아와도 같았다. 이후 이들의 투쟁은 시작됐고 그 중심에는 김 회장이 있었다.
김 회장의 당선을 두고 일각에서는 로스쿨생들이 결집한 결과라고 한다. 반은 맞을지 몰라도 반은 틀리다. 저 분석이 맞다면 로스쿨 출신 서울회장은 벌써 나왔어야 했다. 2012년 변시 1회 부터 해마다 1500명 안팎으로 배출되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 수는 이미 2019년 1만명을 넘어섰다. 25일 서울회장 선거에서 총 투표자는 1만929명이었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바뀐 시대의 바람은 비단 서울지방변호사회장에게만 부는 것이 아니다. 대한변협회장의 위상 또한 눈에 띄게 격상됐다. 변호사 3만여명의 수장으로서, 변호사법상 내부적 권한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대외적 권한이 더욱 막강해졌다.
대법관·양형위원·검찰총장 후보 추천권 외에 최근에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추천위원이라는 법적 권한이 더해졌다. 심지어 초대 공수처장은 대한변협에서 추천한 후보가 임명됐다. 지금까지의 학습으로 볼 때 이런 경향은 지속될 전망이다. 변협회장이 국민의 권리·의무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 커진 것이다. 예산과 규모에서 밀려 서울변호사회장에게 궁색하게 손을 내밀던 그 옛날의 대한변협회장이 아니란 말이다.
게다가 올해는 검찰개혁의 원년이다. 제정에 가깝게 개정된 형사소송법이 이미 시행되고 있다. 지금도 조짐이 일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불가피한 여러 공백과 부작용이 드러날 것이고, 국민의 기본권은 적지 않은 도전을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 여기에서 중심축을 담당해야 할 사람들이 법조인, 그 중에서도 변호사들이다. 이것이 변호사법에 적시된 변호사들의 의무이기도 하다. 그 정점에 변협회장이 있다. 변호사들도 이를 상기해야 한다.
27일 결선으로 당선될 협회장을 선출하는 권리자는 누가 뭐래도 변호사들이다. 이미 오래 전 백척간두에 내몰린 생존권을 지켜 줄 사람에게 표를 주는 것은 당연한 권리 행사다.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다만, 변협과 변협회장이 가지는 시대적 의무가 방기되어선 안 된다. 시대적 변화에도 역행해선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진영론'을 깨고 나와야 한다. 그래야 보인다. 출신·성별·학연을 으레 따지는 것이 선거판이라지만 명색이 변호사들의 선거가 정치판과 같은 수준이어서야 되겠는가.
더 이상 '소 팔러 가는 데 개따라 가듯' 해선 안 된다. 스스로의 의지로 전자투표 버튼을 눌러야 한다. 눈을 부릅뜨고 국민 앞에 부끄럽지 않은 대표가 누군지 가려내야 한다. 국민이 기댈 수 있는 '새 시대 변호사의 품격'을 보여줄 리더를 기대한다. 국민이 살아야 변호사도 산다.
최기철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