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주아 기자] 테슬라와 폭스바겐 등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배터리 내재화 실현 가능성에 대한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자동차 업체의 배터리 독자 생산은 기술이나 수익성 측면에서 불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입을 모은다. 급팽창하는 전기차 시장에서 완성차 업체의 배터리 생산에 따른 공급 과잉 우려는 지나친 기우라는 것이다. 그러나 완성차 업체가 배터리 업체와 합작회사(JV)를 설립하거나 배터리 회사의 인수합병(M&A)을 추진할 경우 내재화 시점은 예상보다 훨씬 빨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4일 <뉴스토마토>가 배터리·자동차 업계와 학계, 금융투자업계에 자동차 업체의 전기차 배터리 내재화 가능성에 대해 자문한 결과 전문가들은 배터리 기업을 배제한 단독 내재화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배터리 산업의 현재와 미래 지속가능성에 대한 전망은 다소 엇갈렸다.
◇ 100% 내재화는 자동차 업체의 '환상'
최근 테슬라와 폭스바겐은 10년 내로 전기차 배터리 수요의 상당 부분을 직접 조달하겠다고 선언한데 이어 제너럴모터스(GM)과 포드, 도요타, 현대차에 이르기까지 완성차 업체의 내재화 바람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자동차 생산원가의 약 4~50% 수준에 이르는 배터리 가격을 자체 생산을 통해 낮추고 수급 불안을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배터리 선도 업체가 수십년의 시행착오를 거쳐 천문학적 투자를 바탕으로 이룩한 지금의 성과를 단시간에 좁히기는 어렵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역설계가 안되는 배터리 특성상 자동차 업체가 선도 업체의 특허 기술을 우회해 배터리를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김현수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이차전지의 진입장벽은 반도체와 비교해 높지 않지만 시장 점유율 추이를 보면 최근 5년 사이 상위 6개 업체의 점유율이 올해 90% 가까이 높아지면서 굉장히 빠른 과점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특허 보유 개수, 업력에 따라 선발주자와 후발주자와의 기술 격차가 벌어진 것으로 신생 업체가 높은 수율로 배터리 양산에 성공할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배터리 전기차의 경우 내연기관차와 달리 수직계열화를 통한 수익성을 기대하기도 어렵다는 판단이다. 장치산업으로 초기 투자가 많은 배터리 산업의 특성상 양산 측면에서 투입 비용과 생산량이 1:1로 매칭되는 상황에 자체적으로 쓸 배터리를 생산하는 것만큼 비효율적인 투자는 없기 때문이다. 즉 폭스바겐이 개발하려는 각형 단일 단전지 제품이 BMW 차량에 탑재되긴 쉽지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최웅철 국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자동차 업체가 배터리 생산시 투자한 돈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자체 생산 차량보다는 배터리를 더 많이 팔아야 하지만 이때 배터리는 전세계적으로 과잉 생산이 돼버린다"면서 "과거 내연기관차를 생산하던 환상에 취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거라 자신하나 수지타산 측면에서 배터리 전문 생산 업체를 따라갈 수 없다"고 진단했다.
다만 단독 내재화를 성공한 특이 케이스가 있다. 중국 전기차 제조업체 BYD의 경우 지난 1995년 배터리 제조사로 출발해 굴지의 자동차기업으로 성장했다. BYD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 '한'은 지난해 6월 출시 이후 중국 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 기본 모델은 완성차-배터리 업체간 합작자 설립 방식
기술 격차와 수익성을 고려했을 때 사실상 내재화의 핵심 모델은 완성차-배터리 업체간 합작사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당장 배터리 공급 부족에 따른 생산 차질을 겪는 자동차 업체 입장에서 배터리 업체와의 협력 없이 단기간 내 내재화는 불가능하다. 즉 내재화 선언은 배터리 기업을 향한 일종의 엄포인 셈이다.
대표적인 모델로는 GM과 LG에너지솔루션이 지난 2019년에 세운 합작법인 얼티엄셀즈가 있다. LGES은 내년 가동을 목표로 오하이오주에 35GWh 규모의 1공장을 건설 중이다.
SK이노베이션(096770)의 경우도 중국 베이징자동차, 베이징전공과 합작을 통해 중국 현지에서 7.5기가와트시(GWh) 규모의 공장을 가동 중에 있다. 이 외에 도요타와 파나소닉이 세운 프라임어스EV에너지(PEVE), 중국 지리자동차와 CATL간의 협력, 폭스바겐과 스웨덴 노스볼트와 대규모 합작 계획 등 완성체-배터리 업체간의 협업 모델이 내재화의 핵심 모델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완성차 업계와의 합작사 설립은 진정한 의미의 내재화로 볼 수는 없고 내재화를 한다 해도 배터리 산업의 특성상 수십개 업체가 난립하기는 어려운 구조"라면서 "과연 누가 현재 대세인 리튬이온 전지의 성능 개선과 가격경쟁력 확보할지에 대해서는 축적된 노하우나 내재화된 기술이 탄탄한 선도 기업이 높은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게 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내다봤다.
◇ 배터리 업체 몰락은 과도한 우려인가…방심은 금물
대부분 전문가들은 구체적인 내재화 시점을 예측하기에는 아직 근거가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완성차 업체의 내재화 흐름에 따라 배터리 업체가 단기간 내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는 지나치다는 것이다. 그러나 배터리 산업이 산업 성장기를 지나 성숙기로 접어들고 있다는 관점에서 완성차 업체의 사실상 내재화가 요원하다는 판단은 굉장히 안일한 생각이라는 지적도 있다.
박철완 서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이차전지의 경우 산업 초기에는 장비 업체도 공정자체가 완성돼 있지 않아 기술 모방이 쉽지 않지만 20년 전에 비해 양산 안정화로 가는 시간이 훨씬 짧아진 데다가 다른 산업에 비해 전지의 경우 기술 발전 속도가 느린 편이라 선도 업체와 후발 업체 간 격차는 생각보다 적다"면서 "폭스바겐이 투자한 노스볼트가 생산한 단일 각형이 언제 최초 납품되는가의 시점을 내재화의 시작으로 보고 있고 시간이 지나 수율이 올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배터리 가격경쟁력이 중요하지 않게 되는 시점이 도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당장 배터리 기술 측면에서 내재화는 가능해도 자동차 업체가 100%의 시간과 돈 인력을 투입해 수직계열화하는 방식의 직접 생산은 효율적이지 않고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면서도 "다만 배터리 공급 부족에 따른 심각한 생산 차질이 우려되는 상황에 자동차 회사들이 연합해 배터리 회사를 인수하거나 합병하는 형태의 시나리오는 예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백주아 기자 clockwor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