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선율 기자] 국내 암호화폐 투자 열풍에 정부가 특별단속이라는 규제 카드를 빼들었다. 그러나 일부 코인들은 가격 폭등 현상이 여전하고, 허위 정보가 난무하는 암호화폐 리딩방, 실명계좌를 받으려는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줄을 이으며 투자 광풍 현상은 이어지는 분위기다.
거래량을 조작해 단기적 시세조종으로 부당 이득을 올리거나 암호화폐 투자를 빙자한 다단계, 사기 등 불법 행위가 난무하는 근본적 원인은 이용자들을 보호할 충분한 보호 규정이 마련돼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자금세탁방지에만 초점이 맞춰져있는 현행 특금법을 다시 정의내리고, 손질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과 한국에서 특별단속 이야기가 나오면서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의 시세가 급락한 20일 서울 빗썸 강남고객센터에서 직원이 암호화폐 시세를 살피고 있다. 사진/뉴시스
20일 국무조정실과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등 10개 부처는 오는 6월까지 암호화폐를 이용한 각종 불법행위를 막기 위한 특별단속에 나선다는 입장을 내놨다.
지난달 25일 금융당국의 특금법(특정금융거래정보법) 시행에도 투기성 투자 과열 양상이 잦아들지 않은 데 따른 특별 조치다. 그러나 특별단속 발표 이후 비트코인 등 주요 코인들의 가격 급락 현상만 나타날 뿐 일부 코인을 중심으로 한 불법행위는 여전히 난무한 상황이다.
대표적으로 도지코인 펌핑(가격 끌어올리기) 현상을 예로 들 수 있다. 지난해 12월 0.003달러대였던 도지코인의 가격은 4월 20일 기준 최대 575원을 넘기며 170배 가까이 가격이 수직상승했다. 현재 시가총액 500억달러(한화 56조원)을 넘기며 장중 한때 리플을 제쳤다가 현재는 시총 5위로 다시 내려간 상태다.
싱가포르에 위치한 한국계 암호화폐업체가 발행한 아로와나토큰 역시 도지코인과 비슷한 가격 급등 현상이 나타났다. 아로와나토큰은 지난 20일 상장해 오후 2시 30분부터 50원에 거래를 시작, 오후 3시 1분에 5만3800원까지 치솟았다. 30분만에 10만7500%까지 오르는 상승률을 보이다가 21일 오전 9시 암호화폐거래소 빗썸 기준 3만원대에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정부에서 시세조정, 투기적 투자 행태를 근절하겠다고 발표한 이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암호화폐 정보 공유 카페나 일부 카카오톡 채팅방에서는 "지금이 매수 기회다"라며 투기를 부추기는 글들이 많다.
비트코인과 알트코인. 사진/픽사베이
투기적 행태보다 더 심각한 건 개인정보유출이나 해킹 등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일부 거래소에서는 해킹으로 의심되는 피해가 드러나 소송전으로 번졌다. 이러한 사이버 침해사고는 암호화폐 열풍이 처음 불었던 2017년에도 많았고, 그 당시 정부는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의무화 등 보안체계를 강화하는 등 대책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당시와 비교해 대책이 진일보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지금은 투자자수와 거래규모가 더욱 폭발적으로 늘었기 때문에 보다 촘촘한 대책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암호화폐 업계 한 관계자는 "시세조정이나 투기를 근절하겠다고 했는데 이에 대한 처벌 규정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용자들의 피해가 속출해도 이를 보호해줄 장치가 없는 상황"이라며 "과거 일부 암호화폐 거래소의 해킹, 허위공시 등 이슈로 소송까지 갔으나 규정 근거가 없어 무죄로 결론나기도 했다. 암호화폐 규율이나 정상적 발전을 위한 사항을 규정한 업권법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밖에 100여곳 가량 되는 중소형 거래소들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오는 9월말 특금법 적용 유예기간이 끝나고 정부는 본격적으로 암호화폐 거래소 정비에 나설 것을 예고한 상태다. 이에 따라 업비트(케이뱅크), 빗썸과 코인원(NH농협은행), 코빗(신한은행) 등 4곳을 제외한 중소형 거래소의 경우 은행으로부터 실명을 확인할 수 있는 입출금 계좌를 받기가 더 어려워졌다.
업계에선 중소형 거래소 이용자들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선 규제를 손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소 암호화폐 거래소 한 관계자는 "암호화폐를 하나의 산업으로 규정하지 않아서 규제의 구멍이 많아지는 것"이라며 "극소수 대형 거래소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면 고객을 보호하는 제반적 서비스가 마련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네거티브식 단속보다는 암호화폐가 산업화될 수 있는 안정적인 토대를 마련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선율 기자 melod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