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헌 시장과 새 시장 사이

박용준 공동체팀장

입력 : 2021-04-29 오전 6:00:00
제38대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식에서 ‘때마침’ 한 네티즌이 질문했다. 서울시청이나 세종문화회관이 아닌 DDP 취임식이 신기하다고. 세종문화회관에서 문화공연이 아닌 취임식같은 행사도 열리는 것까지 통달한 네티즌도 대단했지만, 이 질문에 즉흥으로 4분이나 대답을 이어간 오 시장은 더 대단했다. 
 
마지막엔 너무 길어 본인도 겸연쩍해 한 오 시장의 답변 요지는 ‘본인이 만든 DDP를 처음 와보니 뿌듯한 자부심을 느낀다’였다. 15년 전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만든 DDP가 생겨 근처 상권이 아시아를 대표하는 최첨단 패션상권으로 되살아났다고 자평했다. 이렇게 경제와 활력이 도는 공간을 서울에 더 많이 만들겠다며 마무리했다.
 
하지만, 실제 동대문 상권의 화려한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중국에 밀리고 코로나에 치인 결과 장기 불황을 견디지 못해 아예 문을 닫은 점포들이 속출하고 있다. 공실 찾기가 어렵다던 두타조차 공실률이 늘어나는 실정이다. 최첨단 패션의 기치는 온라인의 성장세에 뺏긴 지 오래다. 녹색창에 검색만 해도 알 수 있는 동대문상권의 2021년 현재다.  
 
오세훈 시장의 과거 흔적 찾기는 이때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 12일에는 120다산콜재단을 찾았다. 이날 2007년 설립 당시 근무했던 직원과의 만남이 이뤄졌다. 과거 오 시장이 콜센터 직원들에게 큰 절하는 사진도 등장했다. 오 시장도 이날 가장 자부심을 느끼고 시민들에게 사랑받은 업적으로 다산콜을 꼽으며 작명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지난 22일엔 서울창업허브를 찾아 청년 스타트업 대표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엔 서울시의 ‘청년창업 1000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오상훈 럭스로보 대표가 참석했다. 청년창업 1000 프로젝트는 오 시장이 2009년 재임 당시 시행한 대표적인 청년창업대책이다. 오 대표는 현재 세계 100대 로봇 스타트업 기업으로까지 성장했다.
 
지금은 과거 재임시절인 2011년이 아닌 2021년이고 우린 ‘이 시국’을 겪는 중이다. 억지로 예전 업적을 소환하거나 200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갈 여유가 없을 시기다. 더군다나 1년3개월짜리 짧은 임기의 시장직 아닌가. 굳이 하나 하나 열거하지 않아도 이미 서울은 눈 앞의 현안으로 가득찬 도시다.
 
차라리 추억놀이 대신 2021년 현장에 집중했으면 어땠을까. 임기 초라 현안 파악에 시간이 필요하다지만 ‘첫날부터 능숙한’ 시장이라면 가능하다. 콜센터에 갔으면 콜센터가 갖고 있는 현안에 대한 입장과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이날 다산콜 측은 공공콜센터 가운데 유일하게 상담데이터 분석 부서가 부재하다고 토로했으나, 오 시장은 이에 대해 명확한 답변 대신 챗봇의 작동원리를 묻는데 긴 시간을 할애했을 뿐이다.
 
서울창업허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청년 스타트업 대표들은 성장단계별 지원체계 미흡을 얘기했다. 시리즈A를 벗어나 B·C단계에 접어든 스타트업들이 겪는 고충들이 줄이어 쏟아졌다. 그러나 허리띠 풀고 속에 있는 얘기를 달라던 오 시장의 답변은 창업도시, 청년도시를 만들겠다는 꾸밈말들로 실체적 단어가 부재했다.
 
물론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다. 과거엔 여당 서울시장이었지만, 현재는 야당 서울시장으로 자치구·시의회 눈치까지 봐야 한다. 호기롭게 부동산 규제 타파를 외쳤지만 오히려 부동산 시장이 출렁거리면서 거래허가제까지 도입했다. 방역수칙 차별화에 초점을 맞춘 서울형 거리두기는 아직 발표도 못하고 있는 상태다.
 
제38대 서울시장은 헌 시장이 아니라 새 시장이다. 정치인으로서의 기능을 무시할 수야 없다지만 믿음직한 '서울 전문 행정가'가 시민에겐 우선이다. 너무 초반부터 많은 일정을 소화하고 언론에 노출될 필요는 없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실제 시민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정책 비전을 선명하게 보여주면 어떨까. 지금의 시민에게 시장으로서 역할을 하는 한 오 시장은 헌 시장이 아니라 새 시장이다.
 
박용준 공동체팀장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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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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