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밴드유랑)함춘호 “동아기획, 시대의 아픔 위로한 음악공동체”

장필순, 박학기와 한 무대…“대중음악계 어려움 뚫을 것”
‘시인과 촌장’ 재결합 시사 “충분한 이유 만들고 있어”

입력 : 2021-05-25 오후 12: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대중음악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특정 시대 음악 산업 변곡점에 우리(동아기획 사단)가 함께 있었구나 싶죠. 당시 책임감을 갖고 음악을 했었나 하는 조심스러운 생각도 있지만, 우리 음악이 시대의 아픈 부분을 위로했고 뿌리 역할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든든한 마음입니다.”

1980년대를 풍미한 듀오 ‘시인과 촌장’의 멤버이자, 수천 장의 가요 녹음에 참여한 한국의 대표 기타 명장. 9일 오후 만난 함춘호가 국내 최초 음악 공동체 ‘동아기획 사단’의 의미를 짚었다. 
 
국내 최초 음악공동체 '동아기획 사단' 출신인 함춘호, 장필순, 박학기. 오는 28~30일 온라인 콘서트 '멈추지마 인디뮤직페스티벌' 무대에 출연한다. 행사가 열리는 곳은 ‘온라인 백마도’다. 홈페이지 내 김포시 백마도를 온라인 지도로 구현해 3개의 무대를 유튜브로 연동시킨다. 사진/경기콘텐츠진흥원

조동진, 들국화, 김현식, 시인과 촌장, 한영애, 신촌블루스, 봄여름가을겨울, 김현철, 장필순, 빛과 소금, 박학기, 이소라, 푸른 하늘….

1985년부터 1994년, 한국 대중음악사를 수놓던 음악가들은 이 음반 기획사를 거쳤다. ‘음악 상품’을 생산하는 오늘날 연예기획사와 달리, 창작 공동체에 가까웠던 음악 집단. 포크, 블루스, 퓨전 재즈 등 장르를 오가며 명작을 쏟아내던 산실.
 
함춘호는 올해 초 SBS ‘전설의 무대 - 아카이브K’로 동아 사단의 30년 묵은 비화의 불씨를 지폈다. 불꽃을 다시 살려 간다. 오는 28~30일 장필순, 박학기와 사전촬영으로 참여한 온라인 콘서트 ‘멈추지마 인디뮤직페스티벌’(이하 ‘멈추지마’, 경기콘텐츠진흥원 주최)가 중계된다. 행사가 열리는 곳은 ‘온라인 백마도’다. 홈페이지 내 김포시 백마도를 온라인 지도로 구현해 3개의 무대를 유튜브에 연동시킨다. 봄여름가을겨울, 에픽하이, 기프트 등 포크와 힙합, 크로스오버 등 다장르 20여팀이 출연할 예정. 코로나 장기화로 위축된 음악신에 활기를 넣고자 열리는 행사다. 
 
국내 최초 음악공동체 '동아기획 사단' 출신인 함춘호, 장필순, 박학기. 오는 28~30일 온라인 콘서트 '멈추지마 인디뮤직페스티벌'을 앞두고 지난 9일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경기콘텐츠진흥원

“코로나 이후 기존 시스템으로 움직이던 것들은 다 망가졌다고 봐야겠죠. 음악계 뿐 아니라 문화 예술, 사회 전반이 그렇지요. 그럼에도 (이 상황을) 어떻게든 뚫고 가보자 하는 것이죠.”

뮤지컬, 클래식 등에 비해 비교적 규제가 덜 풀리고 있는 현 대중음악 공연계 상황에 대해 그는 “단지 지원금만 주고 끝나는 정책이 아니라 세세하고 단계적인 시스템을 정부 차원에서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음악 산업이 한 쪽으로 기울어진 문화가 되면 그 반대편에 있는 음악가와 연주자, 종사자(조명, 연출 등)들은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국내 최초 포크 전문 프로그램 ‘함춘호의 포크송’(TBS FM 매주 월~금 오후 4시∼5시30분·연출 김현우)도 이끌고 있다. 아이돌과 트로트로 양분화 된 현 대중음악 시장의 쏠림현상을 중화하고자 돛을 올렸다. 김민기를 듣고 나면 잠비나이를 튼다. 헤비메탈부터 포크, 발라드까지 스펙트럼이 광대하다. 

“우리는 그간 음악 외적으로 데시벨이 높은 방송들에 익숙해져 있던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됩니다. 음악을 전달하는 사람과 음악에 관한 이야기들이 이 곳에서라도 잠시 머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980년대를 풍미한 듀오 '시인과 촌장'의 멤버 함춘호. 온라인 콘서트 '멈추지마 인디뮤직페스티벌'을 앞두고 만나봤다. 사진/경기콘텐츠진흥원

최근 ‘시인과 촌장’ 재결합도 이 방송에서 시사했다. 1986년 2집 ‘푸른돛/사랑일기’(‘풍경’, ‘아침일기’ 등 수록)를 끝으로 멤버 함춘호, 하덕규는 각자의 길을 걸어왔다. 

“(재결성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다만 우리가 새로운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지, 움직일 수 있는 충분한 이유를 만들고 있는 과정입니다. 물 고이듯 써둔 이야기는 꽤 많지만, 제법 또 시간이 흘렀어요. 그새 낡은 것은 아닌지 고민 중 입니다.”

학창 시절 성악을 전공했던 함춘호는 고교 3학년이던 1980년 전인권과 듀오를 결성하며 본격 기타를 잡았다. 1985년 하덕규는 들국화 최성원 추천으로 함춘호가 당시 기타를 치던 대구로 내려왔고, ‘시인과촌장’ 2집 수록곡들을 들려줬다. 둘은 다시 서울 옥탑방에서 6개월간 2집을 합작했다. 함춘호 특유의 섬세하고 따뜻한 연주로 벼린 ‘푸른돛/사랑일기’는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2007년 집계) 14위에 들 정도로 한국 포크의 모범작으로 불린다.

“하덕규 선배가 그때 8~9곡을 들려주는데 그림이 그려지더군요. 덕규 선배는 글을 쓸 때 상상이나 연출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얘기해요. 세상 풍경을 담백한 필치로 그려낸 ‘고양이’란 곡을 저는 가장 좋아해요. 당시 기타 솔로 녹음도 두 번에 끝내 에너지가 많은 곡이죠.”

대표곡 ‘풍경’에 대해서도 그는 “가사 몇 줄만으로 한 편의 영화를 그려내는 곡은 흔치 않다. 당시 ‘어떤날’의 조동익 이병우를 비롯해 한송연(건반), 김영석(드럼) 같은 뮤지션들의 참여가 음악적 완성도를 높여준 것 같다”고 회고했다.
 
1980년대를 풍미한 듀오 '시인과 촌장'의 멤버 함춘호. 온라인 콘서트 '멈추지마 인디뮤직페스티벌'을 앞두고 사전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경기콘텐츠진흥원
 
80년대 중후반인 ‘시인과 촌장’ 이후부터 현재까지 함춘호란 이름을 지우면 한국대중음악사가 지워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내로라하는 가수들의 라이브와 음반 녹음에는 그의 기타가 인장처럼 박혀 있다. 고 김현식, 김광석부터 조용필, 송창식, 양희은, 전인권, 이문세, 이선희, 임재범, 신승훈, 이승철, 김현철, 토이(유희열), 이소라, 성시경, 박효신, 루시드폴, 아이유, 트와이스…. 

“저는 노래하는 방법을 조금 알기 때문에 멜로디와 가사의 호흡을 살피고요. 어디서 끊어가야 할지에 맞춰 연주합니다. 그것을 따뜻하다고 표현해주시는 것 같아요. 가수들의 음반녹음 연주를 할 때도 악보 코드 구성보단 ‘음악이 그려내는 그림’을 먼저 살펴요. 그 다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기타로 그려가는 것이죠.”

그럼에도 그는 “아직도 기타는 너무나 어려운 악기”라며 “여전히 내면의 함춘호는 자신과 싸우고 있다. 그러나 기타를 칠 때만큼은 여전히 즐겁고 행복하다”고 했다. 또 40년 간 기타리스트로 한 길을 걸어온 만큼 “대중음악 연주자들의 권리 신장을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할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온라인 백마도'에서 열리는 이번 ‘멈추지마’ 공연이 “한국의 다양한 문화, 음악 생산층을 조망할 수 있는 자리였으면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멈추지마’ 공연은 코로나로 인해 만들어진 ‘이름표’라 생각을 해요. 주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다시 시작하자는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음악이라는 것에는 굳이 하나의 특정 의미를 붙이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그저 추상 미술을 바라보듯 다양한 견해들이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980년대를 풍미한 듀오 '시인과 촌장'의 멤버 함춘호. '멈추지마 인디뮤직페스티벌'을 앞두고 사전 촬영 전 만나봤다. 사진/경기콘텐츠진흥원
 
※이번 밴드유랑은 코로나19로 대중음악 공연장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밴드신과 공연장을 조명하고자 경기콘텐츠진흥원과 특별 기획한 인터뷰입니다. 지니뮤직 매거진 내 ‘경기뮤직’ 카테고리에 연재되는 코너에서는 재편집한 글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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