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지난 5월 4일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남양유업 본사 대강당에서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고 눈물을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공동취재사진)
[뉴스토마토 유승호 기자] 사모펀드 운용사 한앤컴퍼니가 남양유업 오너일가 지분 전체를 사들이면서 남양유업의 57년 오너경영이 막을 내리게 됐다. 홍두영 전 명예회장에 뒤를 이어 오너 2세인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이 자리에 오른 뒤 대리점 갑질, 황하나 사건, 댓글 조작, 불가리스 등 숱한 논란을 일으킨 결과다.
2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남양유업(003920)은 홍 전 회장을 비롯한 오너일가 지분 전체를 양도하는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대상은 홍 전 회장을 비롯해 아내 이운경씨, 손자 홍승의씨가 보유한 남양유업 주식 37만8938주로 지분 53.08%에 달한다. 계약금액은 3107억 2916만원이다. 대금이 지급된 시점에 최대주주가 한앤컴퍼니로 변경될 예정이다.
이번 매매계약 체결로 남양유업의 오너경영이 마침표를 찍었다. 남양유업은 홍 회장의 선친인 홍두영 전 명예회장이 1964년 충남 천안에서 만들었다. 당시 홍 전 명예회장은 자신의 성씨 본관인 남양에서 따와 사명을 남양유업으로 지었다.
홍 전 명예회장은 1965년 충청남도 천안에 공장을 지은 뒤 1967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국산 제조 분유인 남양분유를 출시했다. 또 분유 사업을 하는 만큼 1971년부터는 ‘전국 우량아 선발대회’를 열며 사업에 속도를 냈다.
이후 1990년대 디옥시리보핵산(DHA)가 함유된 아인슈타인 우유를 시장에 내놨으며 IMF 시기에 무차입 경영을 시도했다. 특히 2010년엔 프렌치카페 커피믹스를 선보이며 사업 다각화를 통해 창사 이래 처음으로 연매출 1조원 시대를 열었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남양유업 본사 정문. 남양 로고 대신 창립 연도가 표시돼 있다. 사진/유승호 기자
남양유업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건 2013년 발생한 대리점 밀어내기 갑질 사건 이후부터다. 지역 대리점에 물량을 밀어내는 갑질과 함께 이 과정에서 폭언 녹취록이 공개됐다.
이에 전국적으로 불매운동이 일었고 남양유업은 대국민 사과까지 나섰지만 ‘갑질 기업’이라는 꼬리표는 떼지 못했다. 이 탓에 남양유업은 2016년 준공한 신사옥 정문에 남양 로고 대신 창립연도를 표기하거나 아이스크림 전문점인 백미당에 남양을 표시하지 않는 등 ‘남양 숨기기’에 나서기도 했다.
갑질 기업의 꼬리표를 달고 있는 상황에서 황하나씨 마약사건, 댓글조작사건 등 여러 악재가 잇달아 터져 나오면서 남양유업의 사세는 급격하게 기울었다.
창업주인 홍 전 명예회장의 외조카인 황하나씨가 마약 사건에 연루될 때 마다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로 거론되며 브랜드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다. 남양유업은 황하나씨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창업주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또한 지난해 홍원식 회장 등 남양유업 임직원들이 경쟁사인 매일유업을 비방하는 댓글 작업을 벌인 혐의가 드러나 검찰에 송치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불가리스 코로나19 저감 효과를 발표했다가 여론이 크게 악화됐다. 보건당국과 의료계는 실험·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고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남양유업을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행정처분·고발조치했다. 이에 홍 전 회장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회장직을 사임하는 한편 경영권 승계도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남양유업 기업 이미지에 따라 실적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6년 1조 2393억원이었던 매출액은 지난해 9489억원으로 집계됐다. 남양유업의 매출이 1조원 밑으로 떨어진 건 11년 만이다. 지난해 기준 771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남양유업은 올해 1분기에도 138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유승호 기자 pet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