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에게 공지된 행사장으로 취재를 가는 길이라고 치자. 이동 중에 교통사고로 다친 사람을 목격했다면 무시하고 현장에 가야 할까, 다친 사람을 도와야 할까.
사고를 본 주변 사람들이 신고를 했다면 기자는 관찰자로 남고, 현장으로 가는 게 우선이다. 이와 달리 목격자가 혼자라면 기자라도 피해자를 도와야 한다. 생명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기자는 발생한 사고를 데스크에게 먼저 보고하고, 급한 상황이라면 행사 기사는 상대적으로 시간이 비는 다른 기자가 맡으면 된다. 다만 이 경우 행사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돌발 기사를 놓칠 가능성이 있고, 행사를 처음 맡기로 한 기자가 이에 대한 지적을 감내해야 한다는 고민이 남는다.
다른 측면에서 생명윤리에 대한 숙고가 필요한 문제도 있다. 사진작가 캐빈 카터(Kevin Carter)는 수단의 기아 참상을 고발한 사진 '독수리와 소녀'(1993)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사진에서 독수리는 허기진 것으로 보이는 아이가 죽기를 기다리는 듯 바라보고 있다.
이 사진은 당시 뉴욕타임스를 통해 전 세계로 알려졌고, 아프리카의 식량난을 알리는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이 사진으로 상을 수상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대중의 질책도 함께 받았다. 굶주린 아이를 구하지 않고 사진 찍을 생각부터 했냐는 비판에 직면한 것이다. 그는 당시 사진을 촬영한 후 바로 아이를 구했다고 소명했지만, 이 역시 보도 윤리 측면에서 고민이 되는 건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처럼 다양한 상황을 접하고, 타개할 방향을 찾는다. 각자의 판단에 기초해 해법 마련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나만을 위해 살 것인가, 도덕적이지 않더라도 결과가 정의롭다면 이런 비윤리성을 감내할 것인가와 같다. 이런 모순적인 상황을 마주할 때 각자는 어떤 선택을 할지 생각하게 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일에서 정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각자의 선택은 좁게 보면 법철학, 확장하면 개개인 속에 구축된 윤리관에 기초해 다양하게 나온다. 개개인의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서 일정한 기준으로 분명하게 선을 긋고 답을 찾기는 쉽지 않지만, 각자의 선택은 모여서 어떻게든 결과를 낸다.
매 순간 발생하는 이런 다양한 상황 가운데 우리의 삶과 직격될 문제가 다가오고 있다. 바로 내년 3월 치러질 대통령 선거다. 여야를 떠나 후보군은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고, 정권 창출을 위해 추천하거나 지지할 후보가 어떻게 정리될지를 놓고 벌써부터 관심이 높다. 이 시간이 되면 우리는 결국 누굴 살릴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은 어디서 출발해야 할까. 유권자들은 행동의 앞과 뒤가 다르지 않은 이가 대통령이 되길 원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다(시종여일)는 말의 의미를 아는 후보를 살려야 한다는 부분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진정성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다. 현재 잦은 여론조사 속에서 나오는 결과가 특정 후보의 당선을 담보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시류에 편승해 쏟아지는 경마식 보도 역시 걸러서 봐야 한다. 유권자들이 마지막에 살릴 한명을 선택하기에 앞서 각 후보자와 관련한 다양한 뉴스를 꼼꼼히 챙겨서 볼 필요가 있는 이유겠다.
조문식 국회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