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가 빌보드에서 승승장구하는 가운데 아쉬움이 생긴다. 왜 한국에는 빌보드나오리콘차트 같은 공신력 있는 지표가 없을까. 한국의 음악차트는 지속적으로 망가져왔다. 매주순위를 집계하여 발표하던 음악 방송이 TV의 주류에서 밀려났다. 음원이 음원시장을 대처하면서 공신력 있는 차트는 없어졌다. 일개 음원사이트의 이용자들만을 대상으로 집계하는 차트가 주가 됐다. 특정 팬덤의 조직적 움직임이 차트를 결정하게 됐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실시간차트 1등으로 만들기 위한 팬덤의 스트리밍 총공세, 이른바 ‘총공’이 차트를 좌지우지했다. 자발적으로 순위를 올려줄 두터운 팬덤을 보유하지 않은 뮤지션들에게 차트는 ‘그들만의 놀이터’였다. 대부분의 이용자가 차트를 바탕으로 음악을 듣는 국내현실에서 차트에 들어가지 않는 음악은 사실상 발매되지 않은 음악과 동격인 현실에서, 팬덤이 강하지 않은 가수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다. 그런이들을 위해어둠의 시장이 열렸다. 매크로 조작을 통해 차트순위를 올려주는 사재기 업자들이 등장했다. ‘스밍총공VS. 사재기’는 이후 음원차트의 구도가 됐다. 이는 결과적으로 차트에 대한 강력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자신이 모르는 가수가 높은 순위에 오르면 우선 사재기로 의심하는 풍토가 생겼다.
의심을 받지 않는 이들이 있다. K-팝아이돌이 아님에도,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깜짝 화제에 오르지 않음에도 신곡을 내면 최상위권에 오른다. 내는 곡마다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다. 한국의 음악 소비자들은 차트에서 높은 성적을 찍는 뮤지션들을 팬덤형과 대중형으로 나눈다. 앞서 말한 K-팝아이돌을 팬덤형으로, 활동 여부와 상관없이 대중의 지지를 받는 이들을 대중형으로 분류한다. 음원강자들이 곧 대중형 뮤지션이다. 이들의 음악적 공통점은 발라드나 어쿠스틱사운드를 기반으로 하며, 보컬의 음색에 강점이 있다. ‘보는 음악’이 아닌 ‘듣는 음악’을 대표한다. 이들을 일컫는 수식어 중 ‘고막애인’이라는 말이 그들의 특성을 상징한다. 이런 특성은 그들이 계승하는 음악소비의 전통을 보여준다. 과거 TV와 라디오로 음악시장의 구도가 양분되었을때, TV보다는 라디오를 기반으로 대중의 지지를 얻었던 뮤지션들이 있다. 유재하와 이문세가 심야FM전파를 타고 청춘의 영웅이 되었던 1980년대, 유희열과 이승환이 TV출연 없이도 수십만장의 앨범을 팔 수 있었던 1990년대, 라디오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이들은 21세기 들어 라디오의 패러다임이 음악에서 수다로 바뀌면서 후계자를 양성하지 못했다. 같은 시기 인터넷의 보급은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의 주타겟이었던젊은층의 관심을 분산시켰다. 또한 음반시장이 쇠퇴한 반면, 음원은 아직 완전한 시장화를 마치지 못했다. 싸이월드BGM, 핸드폰 컬러링과 벨소리 등이 시장화된 음원의 초기 형태였다. CD라는 음원 저장매체는 mp3에 자리를 빼앗겼지만 음악파일은 정식 시장이 아닌 P2P를 통해 불법다운로드하는 게 당연시 되던 시절이었다. 시장이 없으니 스타도 나오지 못했다.
변화는 모바일과 함께 시작됐다. 2010년대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대중의 음악감상법은 다운로드 대신 스트리밍으로 넘어갔다. 비로소 음원시장이라 불릴 수 있는 규모가 형성됐다. 스트리밍이 완전히 정착한 2010년대 중반부터 절대적 음원강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2015년 데뷔하여 서서히 지명도를 올리다가 2016년 ‘돌아오지마’ ‘저별’ 같은 노래로 차트 정상을 차지한 헤이즈, 같은해 ‘우주를줄게’로 역주행 끝에 결국 1위에 오른 볼빨간사춘기 등이 자리잡은시기다. 그들의 성공은 방송보다는 SNS의 입소문이 결정적이었다. 이는 과거 심야FM에서 김광석, 이문세 등의 신곡이 나오면 다음날 학교 교실마다 “그 노래 들어 봤어?”라는 말로 가득했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화려한 볼 거리는 없어도 오직 멜로디와 가사, 그리고 보컬의 목소리 만으로 사람들에게 ‘듣고 싶은’ 욕망을 불러 일으키는 노래들이 그 대상이었다. 라디오의 시대가 끝났다고 하지만 라디오를 통해 충족되는 수요는 끝나지 않았다. 플랫폼과 형태만 바뀌었을 뿐이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일일공일팔 컨텐츠본부장(noisepop@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