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이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최대 2년간의 무급휴직 등이 담긴 회사의 자구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지난 8일 조합원 찬반투표로 확정된 이번 자구 방안에 따라 쌍용차 기술직 50%, 사무관리직 30%는 우선 1년간 무급휴업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고도 경영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연장될 수도 있다. 임금 삭감과 복리후생 중단 기간은 2년 연장된다.
이렇게 눈물겨운 자구안을 받아들인 것은 회사의 생존을 위한 것이다. 달리 더 좋은 길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견디기 힘든 조건을 감수하겠다고 결단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그리고 생활인으로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결단과 용기는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필자는 24년 전 금융단 출입기자를 지내면서 쌍용차 최악의 순간을 간접적으로 겪어봤다. 1997년 한국이 외환위기에 빠져들었을 때 많은 대기업이 부도 위기에 몰렸을 때였다. 쌍용차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루 사이에 자그마치 7000억원어치의 어음이 만기도래했지만, 쌍용차는 속수무책이었다.
쌍용차가 그런 위기에 빠진 것은 기본적으로 쌍용그룹의 무모한 투자에서 비롯됐다. 그렇지만 쌍용차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당시 상당수 대기업이 무리한 차입투자로 비슷한 처지에 몰렸다. 정부 당국도 수수방관할 수는 없었다. 은행 등에 쌍용차 어음만기를 만기연장해 주라고 당부했다. 필자는 그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봤다. 그렇지만 기사를 쓸 수 없었다. 자칫 대기업 집단부도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공감했기에 당국의 움직임을 눈감아줬다.
그렇다고 위기를 완전히 넘긴 것은 아니었다. 그 이후로도 쌍용차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중국 업체에 매각됐었지만 기술도용 우려 등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중국기업이 철수한 후 인도 기업이 인수하자 안정을 찾나 싶었지만, 결국 지금 같은 지경에 이르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전염병 사태까지 닥치자 쌍용차를 또다시 험한 절벽으로 몰아갔다.
쌍용차가 겪어온 이같은 여정을 돌아보면 올바른 기업가정신을 가진 투자자를 확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지 새삼 절감하게 된다. 쌍용차를 거친 기업과 기업인들에게 온전한 마음으로 쌍용차에 투자하고 성장시키겠다는 의지가 부족했다고 여겨진다. 그렇기에 쌍용차 노조원들의 이번 결단이 더욱 소중해 보인다.
그렇지만 앞으로 생존의 길이 그야말로 험난하다. 국내 시장은 현대차그룹이 과점하고 있다. 외제 자동차들의 수입도 늘어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아울러 전기차와 수소차 등 친환경차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쌍용차로서는 생존전략을 세우기가 더욱 어렵다.
새로운 흐름에 잘 올라타면 새로운 생존과 도약의 기회가 열린다. 반면 실패하면 더욱 깊은 나락으로 미끄러지게 된다. 그러므로 노사가 화합하면서 더욱 진지한 자세로 올바른 생존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쌍용차가 최근 첫 전기차 신차명을 '코란도 이모션'으로 확정하고 양산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경영여건 변화에 부응하기 위한 시도로 평가된다.
자의든 타의든 큰 어려움을 겪어온 기업들이 주변에 제법 많다. 이스타항공의 경우도 코로나19로 경영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생존의 위기에 직면했다. 인수희망기업이 나타났지만, 그 미래를 아직 낙관할 수는 없다. 해운회사 HMM은 요즘 공전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대한전선이나 한진중공업은 새로운 투자자를 만나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것이다. 독일의 문호 요한 볼프강 괴테가 역설했듯이, 불행 속에서도 다시 회복할 수 있고 위험에서 살아날 수 있으며, 언제나 파멸하는 것은 아니다. 노사가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힘을 합친다면, 새로운 활로는 열릴 수 있다.
얼핏 보아 행운의 여신의 도움도 필요해 보인다. 그렇지만 스스로의 한결같은 노력이 없다면 행운의 여신도 외면하는 법이다. 쌍용차를 비롯해 지금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 난국에도 잘 참으면서 힘을 모아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러면 머지않아 결실을 맺을 것으로 기대한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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