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대중음악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배드램 멤버들, 왼쪽부터 편지효(기타), 김소연(베이스), 이동원(보컬·기타), 최주성(드럼). 사진/경기콘텐츠진흥원
그의 입에서 음표들의 화마가 쏟아졌다. 옥슨80 ‘불놀이야’를 하드록으로 재편곡한 무대. ‘한국대중음악상(한대음) 후보자’라는 소개 뒤 카메라가 입을 쩍 벌린 심사위원 이승철,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을 차례로 잡았다.
KBS2 음악 예능 ‘새 가수’에 출연 중인 이동원의 포효가 심상치 않다. “다시 록 부흥이 오는 것 아니겠냐”는 말이 연일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다.
올해 2월 그가 속한 밴드 배드램(BADLAMB)은 ‘2021 한국대중음악상(한대음)’ 최우수 록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한대음’은 음반이나 음원의 판매, 집계 보다는 예술적 가치를 더 중시한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10년 간 ‘생계형 밴드’를 이어오면서 지쳐있었는데 굉장히 좋은 피드백이 됐어요. 동네방네 자랑 엄청 하고 다닙니다. 허허허”
최근 서울 마포구 신수동에 위치한 ‘스튜디오801’에서 만난 배드램 멤버들, 이동원(보컬·기타), 편지효(기타), 김소연(베이스), 최주성(드럼)이 녹음 장비와 어지럽게 늘어져 있는 배선들을 등지고 말했다.
배드램 멤버들,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최주성(드럼), 편지효(기타), 이동원(보컬·기타), 김소연(베이스). 사진/경기콘텐츠진흥원
2010년대 초반 이동원 주축으로 배드램의 전신 밴드가 결성됐다. ‘까마귀’와 ‘타마 앤 베가본드’에서 활동하던 편지효가 2018년 들어오면서 지금 진영이 갖춰졌다. 새롭게 바꿔단 팀명은 ‘대혼돈(Bedlam)’과 ‘나쁜 산양(Bad lamb)’의 중의.
“거친 사운드를 표방하되 신을 향한 절대 믿음을 조소하겠다는 이중적 의미입니다. 성경에나 나올법한 고약한 어린 양을 떠올려봤습니다.”(이동원)
지난해 11월 발표한 첫 정규앨범 ‘Frightful Waves’로 이들은 묵직한 세계관의 첫 발을 뗐다. 멤버들은 “편의성을 위해 만든 인류의 사회적 시스템이 의도치 않게 인류를 파멸과 재앙에 이르게 하는 역설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음악 CD 표지와 속지에 거대한 파도를 그렸다. 사회 시스템에 대한 은유이자 형상화다. 앨범 전체의 시놉시스를 만든 이동원은 “거스를 수 없는 파도 앞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그들이 피부로 느끼는 울분과 분노를 다뤄보고 싶었다”고 했다.
라디오헤드의 음악적 발상을 빌린 이들은 ‘목소리 없는 자들’을 대신해 묵직한 록의 바위를 던져댄다. 타이틀곡 ‘겁’은 사회에서 부조리한 일을 당하고도 울분을 삼키며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수록곡 ‘The Plague’ 역시 비정규직 근로자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한 곡이다.
“목소리를 낼 수조차 없는 사람일지라도 ‘살아 있다’고 비꼬듯 얘기해주고 싶었어요.”(이동원)
배드램 멤버, 편지효(기타), 이동원(보컬·기타). 사진/경기콘텐츠진흥원
재앙에 관한 곡 ‘Sodom’에서는 오늘날 코로나19 사태도 아른거린다.
“곡의 화자는 작고 몸이 불편한 친구에요. 산 속에서 혼자만 재앙의 징후를 발견하고 마을에 전파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죠. 소통 단절로 파멸되는 인류를 그렸어요. 코로나 전에 쓴 곡인데 들어맞아서 저희도 얼떨떨해요.”(이동원, 최주성)
멤버들은 연주로 최후의 날을 앞둔 인류에 죽비를 내린다. 공기를 가르는 중저음의 기타리프와 둔탁한 드러밍, 이를 뚫고 나오는 시원한 가창은 묵시록의 밀림을 조성한다. 70년대 하드록과 80년대 헤비메탈, 90년대 그런지의 배드램식 삼중결합. 에어로스미스, 건스앤로지스, 앨리스인체인스 같은 다양한 음악가들 환영이 스쳐간다.
수록곡 ‘The Plague’에는 레드핫칠리페퍼스풍 펑키한 드러밍을 알게 모르게 심어 놨다. 편지효는 앨범 전체 거친 기타 사운드에 푸르죽죽 끈적이는 블루스 음색들을 투과시켰다. “사실 에릭 클랙튼을 제일 좋아합니다. 삶을 녹여내는 연주거든요.”(편지효)
배드램 멤버 김소연(베이스), 최주성(드럼). 사진/경기콘텐츠진흥원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이들 역시 비대면 환경에 적응 중이다. 멤버들 생활상을 담은 유튜브 콘텐츠도 준비하고 있다.
“음악은 진지해도 알고 보면 저희는 경박하기까지 한 사람들이랍니다. 보드게임, 등산, 수영 좋아하고요. 진지하고 무거운 표정 뒤 친근한 모습도 많이 보여드리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앨범을 하나의 공간으로 상정해 달라는 요청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어느 날 아파트 단지에서 할머님의 무거운 짐을 들어드렸어요. 커피 한 잔 하고 가라고 해서 따라갔는데 현관문을 열자마자 ‘누추한 곳에 초대해서 미안하다’ 하시더라고요. 실제로는 그렇게 느끼지도 않았는데... 저희 앨범도 그때 그 현관문처럼 일단 열어보시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최주성)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이번 밴드유랑은 코로나19로 대중음악 공연장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대중음악신과 공연 현장을 조명하고자 경기콘텐츠진흥원과 특별 기획한 인터뷰입니다. 지니뮤직 매거진 내 ‘경기뮤직’ 카테고리에 연재되는 코너에서는 재편집한 글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