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터리 기업에 있어 가격 경쟁력과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기초 제조기술은 양립하기 어렵다."
지난달 30일 일본 극우 성향 언론 산케이신문이 LG에너지솔루션을 저격하며 언급한 내용이다. LG엔솔 배터리를 탑재한 제너럴모터스(GM) 볼트EV 리콜 소식이 전해지자 곧장 K-배터리 때리기에 나선 것이다. 산케이 보도는 리튬이온 이차전지 최초 개발국으로 1등에서 3등으로 추락한 일본의 '뒤끝 작렬'한 흠집내기로 무시해 넘길 수 있다. 문제는 LG엔솔 내부의 불안과 좌절이 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직원들의 사기 저하는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코나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리콜에 이어 GM 2차 리콜 악재가 잇따라 터지면서 더 심화한 모습이다. 직원들은 배터리 화재 원인의 책임 소재와 문제 해결 과정의 미흡한 점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반복적인 문제 제기를 익명성 뒤에 숨어 조직을 흔드는 일부 성격 꼬인 직원의 악의적 선동으로 치부하기보다는 이를 귀기울여 듣고 조직 차원에서 근본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영진들의 고민도 깊을 것이다. 지난 2일 김종현 사장은 직원들에게 보내는 CEO 말씀을 통해 '위기'를 언급했다. 김 사장은 백신 접종으로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이 생기듯이 더 이상 품질 이슈로 문제 되지 않도록 전사적 역량을 모으자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화재 이슈를 잡지 못하면 회사 존립이 위태로워질 수 있는 만큼 절박한 심정으로 함께 매달리자는 것이다. LG엔솔은 코나 리콜 발표가 있었던 지난 2월 24일을 기억하기 위해 매월 24일을 ‘Q(Quality) day’로 정해 품질 혁신활동도 추진하고 있다.
국내 1위 배터리 기업 LG엔솔의 위기는 K-배터리 전체의 위기나 다름없다. 전기차 수요 폭증으로 배터리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수많은 경쟁자들이 뛰어들고 있다. 현재 왕좌를 지키고 있는 중국은 가격 경쟁력이 높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에 더해 나트륨이온 배터리(SIB)로 시장을 제패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일본은 1등 국가로서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고품질 소재와 부품 생산으로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K-배터리 3사도 차세대 전지 개발을 위한 전략적인 투자를 확대해 나가고 있지만 화재 이슈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시장의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위기는 기회라고 한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기업은 많지 않다. 회사를 사랑하고 조직의 번영을 바라는 직원들의 고언을 외면하는 내부 분위기로는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진짜 내부의 적은 장기적인 미래보다 눈앞의 이익을 챙기는 이들이다. LG엔솔은 한국에 배터리 산업을 태동시키고 세계 1위까지 올려놓은 주역이다. 직원들은 급속한 성장 속에서 부서간 소통 부족, 책임 회피 등의 조직문화가 생겨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면 화재 원인 규명, 인적 쇄신, 조직문화 개선 등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성공에만 안주하고 쇄신의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언제든 지금의 자리에서 내려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LG엔솔이 도전과 혁신을 주도하던 초심으로 돌아가 중국과 일본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압도적인 1등 기업이 되길 바란다.
백주아 기자 산업1부 기자 clockwor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