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 서울과 지방의 얘기가 아니다. 구축 단지와 신축의 비교도 아니다. 한 아파트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전세가 갱신계약이냐 신규계약이냐에 따라 가격이 벌어지고 있다.
한 예로 강동구 고덕동에 위치한 어느 아파트의 전용 84㎡ 매물은 지난달 보증금 5억7750만원에 전세계약을 맺었다. 같은 달 다른 매물의 전셋값은 11억원이었다. 2년 전 같은 면적대의 전세가격은 약 5억5000만원이었다.
머포구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나왔다. 마포구에 위치한 한 아파트는 전용 84㎡ 매물이 이달 7억8750만원에 전세거래됐다. 이보다 두 달 앞서 거래된 같은 면적대 매물의 보증금은 11억원이었다.
같은 아파트, 같은 면적대인데도 전셋값 차이가 수억 단위로 벌어졌다. 시장에선 이를 이중가격이라고 부른다. 지난해 하반기 임대차법이 시행되면서 전세시장에서 이 같은 경향이 짙어졌다.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 등이 적용되면서, 전세 갱신계약은 임대료 상한선이 5%로 제한된다. 반면 신규계약은 제한이 없다. 이에 신규계약의 전세가격은 마구 널뛰는 중이다.
전세의 월세화 현상이 이어지는 상황이란 점을 고려하면 신규계약의 가격 상승은 앞으로도 오를 가능성이 상당하다. 수급 불균형은 가격 변화를 부른다. 월세화는 곧 전세 공급 감소다. 경제학 교과서는 공급이 줄면 가격이 오른다고 가르쳤다.
전세의 월세화가 장기화될 조짐도 읽힌다. 전세 공급의 한 축을 담당하는 다주택자는 강한 규제를 받고 있다. 종합부동산세, 재산세 등 보유세 부담이 무거워지면서, 세금 전가 이슈가 불거지는 실정이다. 세입자에게 세금 부담을 떠넘기기 위해 전세를 월세로 돌린다는 의미다. 금리가 낮은 점도 월세 전환을 유도하는 요인이다.
갱신계약으로 임대료 상승이 5% 내에서 이뤄졌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다. 지금의 가격 상승을 나중으로 미룬 것일 뿐이다. 저렴한 매물을 찾지 않는 이상, 혹은 매매로 가지 않는 이상, 2년 뒤에도 전세시장에 머무르기 위해선 수억원 이상의 추가 보증금을 마련해야 한다.
이 때문에 한 전문가는 “임대차법은 조삼모사인 정책”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이밖에 많은 전문가들이 진작부터 이중계약, 2년 뒤 전세 폭등을 우려해왔다.
그럼에도 정부는 자화자찬이다. 전세계약 갱신율이 77%에 달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임차인의 주거 안정성이 제고되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맞는 말일 수는 있으나 조건이 붙는다. 갱신계약에 한해서, 또 단기 시장에 한해서다. 현실 왜곡, ‘입맛대로 통계’란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시장이 바라는 전세 안정은 단기 성과가 아니다. 집값 상승으로 내 집 마련의 준비 기간이 더 길어지고 있다. 전세 시장에 머무르는 기간 역시 늘어난다. 장기적인 전셋값 안정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뜻이다. 임대차법 시행 후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진통이 가시지 않는다는 건, 수정 보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김응열 기자 sealjjan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