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인구절벽’, ‘초고령화’. 팬데믹·기후변화 다음으로 자주 등장하는 용어다. 우리는 비를 맞고 바람을 느끼며, 숨을 쉬는 공기와 같이 어제 오늘의 날씨처럼 기후변화에 무딘 존재들이다. 지구가 아파하고 신음하지만 당장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 무딘 것처럼 말이다.
팬데믹 우려도 매한가지인 듯하다. 4차 유행에도 ‘노 마스크 풀파티’와 ‘유흥시설’이 불야성인 걸 보면, 예상 밖의 결과가 빚은 모순이나 부조화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인구감소 현상에도 무딜 수밖에 없다. ‘저출산으로 2050년이면 제주도가 한개씩 사라진다’는 인구학자의 발언에 공감하면서도 돌아서면 남 일인 듯 무딘 한국사회의 속성을 보면, “그래 나 살기도 힘든데 인구 걱정까지”라는 한숨만 자아낸다.
하지만 머지않은 ‘인구지진’ 얘기는 근심해볼만한 걱정거리다.
영국 인디펜던트지 경제부장을 역임한 폴 월리스의 저서에는 자연 재앙인 지진보다 급격한 인구 고령화의 파괴력을 의미하는 ‘인구지진’의 사회적 문제를 지목한다.
2017년 이후 40만명 이하로 감소한 우리나라 출생아 수는 지난해 30만명 이하로 급감했다. 고령화는 일본 28.4%, 독일 21.7%, 영국 18.7%, 미국 16.6%보다 낮은 16.4%다. 그러나 고령화 속도는 2045년 일본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사상 처음으로 출생아 수보다 사망자 수가 더 많은 ‘데드크로스’ 현상이 나타난 해다. 경제활동 인구 감소, 노인 부양 부담 등은 한국 사회가 피할 수 없는 당면과제다.
국민연금 부채를 떠안을 미래세대는 어떤가. 국민연금은 다시 말하면 ‘세대 간 사회계약’이다. 현 가입자뿐만 아니라 미래 예상되는 가입자의 보험료와 노후연금 수령액까지 모두 고민해야한다.
고령화에 따른 복지재정 뿐만 아니다. 개인은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후준비 부족에 직면한다. 막대한 재정 투입으로 둔갑된 중구난방 출산장려 정책의 그르침을 따질 단계도 아니다. 이미 골든타임은 놓쳤다.
이 점을 인지한 정부도 외국 인력 활용 방안, 폐교 대학 청산제도 마련, 노인돌봄체계 개편 등 사실상 ‘플랜B’로 돌아섰다. 하지만 정년 연장 문제를 빼놓고선 땜질 처방에 불과하다.
당장 10년 후부터 불어 닥칠 인구 리스크부터 예상해보자. 10년 간 눈에 띄는 인구·지역소멸 충격은 와닿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추세라면 매년 빚더미를 떠안은 은퇴자들이 사회로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
‘인생 이모작’이라는 달달함도 노후준비 부족에 직면한 이들에게는 현실의 벽일 뿐이다. 일본은 ‘정년 70세’ 시대를 선언했고 독일은 67세다.
물론 노사 이해관계와 청년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해결해야할 과제다. 그렇다고 기업의 자발적 유도에만 맡기는 시장 논리는 10년 후 불어올 경제·사회적 파장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우리 경제의 허리 역할을 하는 중산층들이 신경써야할 선제적 과제이지 않나. 집값 고점으로 남은 중산층은 공무원뿐이지 않은가.
‘우리 사회구조가 뿌리째 흔들리는 충격을 받을 것’이라며 정년을 넘긴 ‘최장수’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발언이 예사롭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