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넬스러운 팝록 사운드…‘음으로 그려낸 시화’

‘우주적 몽환성’ 넬 특유 인장 찍힌 ‘유희’
6분30초 대곡 ‘위로’…시규어로스 연상시켜
“타이틀곡이란 뮤지션 추구하는 방향과 맞아야”
9집 ‘Moments in Between’으로 돌아온 밴드 넬①

입력 : 2021-09-02 오전 8: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사랑의 관계는 때론 폭죽 같은 것이다. 빨강으로 타오르다, 변곡점을 지나고, 파랑으로 급 냉각되고 마는.
 
넬 9집 ‘모먼츠 인 비트윈(Moments in Between)’의 수록곡들을 미리 들어봤다. 영화 ‘블루발렌타인’의 주연 라이언 고슬링이 사라져가는 연기(煙氣)를 바라보다, 스크린 밖으로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시퀀스 사운드(가상악기)와 리얼 악기(베이스, 기타, 드럼)가 반짝이며 균형을 이루다가도, 겹겹이 쌓이는 스트링 사운드가 무채색 빗줄기의 붓질처럼 마음을 헝클어뜨린다.
 
“(상대에 대한) 끌림 뒤 찾아오는 불안함, 당혹스러움에 관한 정서가 앨범 전반에 깔려 있습니다. (관계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란 ‘잠 못 이루는 밤’과 닮아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김종완)
 
지난달 31일 화상으로 만난 밴드 넬의 네 멤버들, 김종완(보컬)·이정훈(베이스)·이재경(기타)·정재원(드럼)은 이제 막 작업을 끝낸 9집에 대해 “만족스런 완성도”라며 후련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넬 9집 ‘Moments in Between’. 사진/스페이스보헤미안
 
오는 2일 발표되는 ‘Moments in Between’은 밴드가 8집 ‘칼라스 인 블랙(COLORS IN BLACK·2019)’ 이후 2년 만에 내는 첫 정규 음반이다. 
 
교통사고처럼 다가오는 인연의 시작부터, 설레임과 끌림, 망설임, 위태로움 같은 감정의 변화를 작가주의 기법으로 채색해간다. 그간 선공개로 발표해 온 싱글 ‘듀/엣(du/et)’, ‘크래쉬(Crash)’, ‘돈 허리 업(Don't Hurry up)’을 포함한 10곡은 시간 순에 따라, 감정의 주파수를 출렁이며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음으로 그려낸 시화(詩畵)’. 스매싱 펌킨스 ‘멜랑 콜리 앤 인피니트 새드니스(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나 시규어로스 ‘아예티스 비욘(Agaetis byrjun)’ 같은 서사 앨범처럼 ‘순서대로 듣기’가 권장된다.
 
노랫말과 멜로디의 이율배반 파고는 첫 곡 ‘크래쉬(Crash)’부터 밀려온다. 간결한 피아노 타건과 산뜻한 기타 코드는 밝고 예쁘게 일렁이지만, 여기에 겹쳐내는 가사는 씁쓸하고 낮게 너울댄다. ‘홀딱 반하다’란 영어 표현(Crush on you)을 살짝 비틀어 교통사고(crashin’ into you)에 빗댔다. 
 
“사람 간 관계가 타이밍, 상황에 따라 결정지어진다는 게 씁쓸하기도 하고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령 연인관계에서 서로에 대한 끌림이 크다고 해도 타이밍이 맞지 않는다면 결말이 불안하거나 불행할 수 있잖아요.”(김종완)
 
이 곡을 포함, 앨범 전체 사운드를 디자인할 때 김종완은 “밝고 경쾌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의도와는 상관없이 불길해 질 수 있는 감정”을 기저에 깔았다. 톤적으로 투박하고 날 것 같은 록 사운드가 주가 되던 전작(‘COLORS IN BLACK’)과 신보의 사운드 베이스가 다른 것은 이 때문이다. 악상을 그려가는 것을 비롯해 믹싱 단계에서조차 팝에 가까운 어법을 채택했다.
 
“사운드적으로 ‘COLORS IN BLACK’과 완전히 다르지는 않되 조금 더 어루만져졌다고 할까요. 믹싱 단계 때는 거의 앰비언트 팝 정도에 가까운 느낌을 사운드 베이스로 삼았던 것 같습니다.”(김종완)
 
밴드 넬 멤버들, 이정훈(베이스)·김종완(보컬)·정재원(드럼)·이재경(기타). 사진/스페이스보헤미안
 
조디 포스터 주연의 영화의 영감으로 팀명을 지었듯, 지난 20여년간 넬의 사운드는 대중으로부터 고유성을 획득해왔다. 마이너 코드의 음울한 분위기와 날카로운 록 사운드가 주가 되던 초기작으로부터 ‘거듭된 진화로 획득한 고유성’이다. 
 
신보 역시 팝 성향이 두드러진다 해도, 타이틀곡 중 하나인 ‘유희’에는 넬 특유의 인장이 꾹 찍혀 있다. ‘넬스러움(넬리쉬)’을 놓치지 않는다. 
 
가상악기와 리얼악기(베이스, 기타, 드럼)가 최상의 균형을 찾아가는 모던록 풍 곡에서는 ‘Ocean of Light’, ‘습관적 아이러니’, ‘오분 뒤에 봐’ 같은 곡들에서 펼쳐보였던 우주적 몽환성이 아른거린다. 반짝반짝 별가루를 뿌린 듯한 악기들의 연주가 ‘고장난 마음’과 ‘아름다운 유희’ 사이를 넘실거릴 때, 텅 빈 방에서 툭툭 내뱉듯 하던 대화체의 여린 미성은 겹겹이 쌓는 더블링의 화성으로, 음률 경계를 무너뜨리고 공중 발화한다.
 
6분30초에 이르는 대곡이자 또 다른 타이틀곡 ‘위로(危路)’는 아예 1막과 2막으로 나눠 한 곡에 완전한 기승전결의 꼴을 갖춘다. 1막에선 전자기타 핑거링과 공간계 잔향으로 여울지는 데뷔초 넬의 감성은 ‘노을 진 하늘 갈라진 틈 사이 쏟아지는 빛처럼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연주한다. 2막에선 고조되는 스트링과 브라스, 타악기가 미성과 맞물리며 ‘그 아름다움이 내재할 수 있는 위태로움’을 흩뿌린다. 4집 ‘Separation Anxiety’ 대미를 장식하는 ‘12 Seconds’의 연작 느낌을 주면서도, 어떤 지점에선 아이슬란드 밴드 시규어로스를 듣는 듯한 착란이 인다. 뮤직비디오에는 과거 ‘그리고 남겨진 것들’로 호흡을 맞춘 배우 이민기가 출연했다.
 
“타이틀곡이란 꼭 대중성에 맞춰야 한다기보다는, 뮤지션 추구하는 방향 역시 잘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위로에서 느껴지는 어쿠스틱한 사운드와 공간감, 유희의 프로그래밍된 소리와 밴드 밸런싱의 조화, 둘 다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장르들이 혼합돼 있더라도 그것들을 한 앨범에 실었을 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팀이었으면 좋겠어요. ‘넬스럽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김종완)
 
타이틀곡 ‘위로(危路)’ 뮤직비디오에는 과거 ‘그리고 남겨진 것들’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 이민기가 출연한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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