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새나 기자] 중남미 국가 엘살바도르에서 암호화폐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사용한다. 온라인상에서 디지털 화폐로 쓰이던 암호화폐가 실제 화폐로 쓰이는 것이다. 가격변동성이 큰 비트코인을 실물경제에 도입해도 괜찮냐는 국제 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의 기대감은 한껏 커졌다. 법정화폐 도입에 이어 비트코인을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 승인하는 등 글로벌 제도권 편입에 대한 기대감이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7일(현지시간)부터 엘살바도르에서는 비트코인이 법정화폐 지위를 갖게 된다. 이 나라에서는 지난 6월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 주도 하에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7일을 비트코인의 앞 알파벳을 딴 'B-데이'라고 부르며, 비트코인 자동입출금기(ATM)를 설치하는 등 인프라 구축에 분주하다. 부켈레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정부가 비트코인 200개를 샀으며, 앞으로 더 많은 비트코인을 살 것"이라고도 밝혔다.
엘살바도르 정부가 비트코인의 장점으로 강조하는 것은 저렴해진 송금 수수료다. 경제의 4분의 1이 해외에서 보내오는 돈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비트코인을 이용하면 송금 과정이 더욱 저렴하고 편리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또한 국민 70%가 은행 계좌가 없는 가운데 최대한 많은 국민들을 금융시스템에 접근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비트코인. 사진/뉴시스
그러나 엘살바도르의 국민 약 75%는 비트코인의 법정화폐를 반대하고 있다. 엘살바도르 센트랄아메리칸대학(UCA)이 최근 발표한 국민 1281명 대상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트코인 법정통화 채택 결정에 '매우 반대'(22.7%)하거나 '반대'(45.2%)한다는 응답이 3분의 2 이상이었다.
반대론자들은 부패가 만연한 엘살바도르에서 암호화폐가 '돈 세탁' 관행을 부추길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엘살바도르의 경제학자 리카르도 카스타녜다는 가디언을 통해 "대통령은 이 법이 자국을 '돈세탁의 천국'으로 만들어버리는 등 거시 경제적 영향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실험은 비트코인의 가치 논쟁에 불을 붙일 것으로 보인다. 해외시장에서는 이미 암호화폐 산업이 제도권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는 4월 나스닥에 상장했다. 당시 국제 사회는 "코인베이스의 증시 데뷔는 비트코인을 비롯한 디지털 자산 발전의 또 다른 이정표"라고 평가했다.
제도권 진입의 마지막 관문은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다. 지난 2013년 이후 수십건의 비트코인 ETF 신청서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됐지만 "변동성이 너무 크고, 투자자 보호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승인되지 않았다.
다만 겐슬러 SEC 위원장은 엄격한 규칙 하에 선물 기반 비트코인 ETF를 고려하는 데에 열려있다는 입장을 최근 시사하기도 했다. 겐슬러 위원장은 최근 애스펀 안보포럼 강연에서 "주식 토큰과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법에 따라 증권으로 취급될 수 있다"며 "암호화폐가 널리 사용되려면 그에 상응하는 규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규제 강화를 강조한 발언으로 들리지만, 제도권 진입을 고려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겐슬러 위원장의 발언 이후 프로셰어스, 인베스코, 반에크, 발키리 디지털에셋 등 자산운용사들이 비트코인 ETF 신청서를 제출했다.
비트코인 ETF 승인 기대감이 높아진 가운데 지난달 25일(현지시각) 에릭 발츄나스 블룸버그 ETF 선임 애널리스트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비트코인 선물 ETF가 10월 말 출시될 수 있다. 프로셰어스의 비트코인 ETF가 가장 유력하다"고 게시글을 올렸다.
게리 겐슬러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 사진/뉴시스
권새나 기자 inn1374@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