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 논의를 위한 '8인 협의체'가 지난 8일 출범했다. 본회의 상정 하루 전인 오는 26일을 데드라인으로 본격적인 협의에 들어갔다. 지금까지의 논란은 대체로 '권력에 대한 언론감시 기능의 위축'에 집중됐다. 그렇다면, 일반 서민 입장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득일까, 실일까. <뉴스토마토>는 3회에 걸쳐 수술에 들어간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살펴 전한다.<편집자주>
#. 2017년 한 방송사의 '먹거리 고발' 프로그램은 '대왕 카스테라' 제조 과정을 보도해 소비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대왕 카스테라에 대량의 식용유와 화학첨가물이 들어간다는 내용이었다. 수많은 소자본 창업자들의 희망이었던 대왕 카스테라는 '기름빵'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용유를 사용한 제조법은 제빵업계의 ‘일반적인 조리법’으로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미 카스테라 매장들이 줄폐업한 뒤였다.
#. 2020년 외국에 서버를 둔 ‘디지털교도소’가 모 대학 A교수의 휴대폰번호와 텔레그램 대화 내용 등을 올렸다. ‘N번방 자료’를 구매하려 했다는 의혹과 함께였다. 이 내용은 언론을 타고 삽시간에 확산됐다. A교수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되돌아 온 것은 욕설과 '낙인'뿐이었다. 경찰 조사 결과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월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법원의 소극적 손해배상액 산정 경향에 허위·조작정보를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있었다"면서 "허위·조작정보로 취득한 이익을 박탈한다면 예방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법안발의 배경을 밝혔다. 언론이 가해자가 된 상황에서 언론의 감시 내지 견제 대상인 법원이 소극적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언론의 횡포에 피해를 본 국민들이 제대로 구제를 받지 못한다는 취지다.
김 의원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대표 발의 이후 일관되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17조의2 1항이 정한 기사열람 차단 청구 등이다. 30조의2가 규정한 이른바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과 입증책임의 전환 등이다. 여야 협의체에 개정안의 수정안이 올라 있지만 이들 논점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17조의2 1항은 "피해를 입은 자는 해당 인터넷신문사업자 또는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에게 언론보도등의 열람차단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30조의2 1항은 "법원은 언론등의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에 따라 재산상 손해를 입거나 인격권 침해 또는 그 밖의 정신적 고통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보도에 이르게 된 경위, 보도로 인한 피해정도, 언론사등의 사회적 영향력과 전년도 매출액을 적극 고려하여 손해액의 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손해배상액을 정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대왕 카스테라' 사건이나 '디지털교도소' 사건에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적용할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이나 기사열람 차단 청구 규정은 표면상으로 서민 피해자의 구제책으로 작용할 수 있어 보인다. 먼저 문제가 되는 기사열람을 차단해줄 것을 중재부에 신청해 받아들여지게 되면 언론을 통한 오보의 확산은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소송을 통한 손해배상 청구로 정신적 손해에 대한 충분한 재산적 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찬성하는 여권의 설명이다.
그러나 국민적 차원에서는 해당 조항에 대한 의미를 신중히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허위·조작'이라는 개념이 모호해 위헌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보도 후 이해관계자가 허위·조작이라고 이의를 제기한다면 언론은 그때마다 분쟁에 휘말리게 될 것이고 법원에서도 심급별, 재판부별 판단이 제각각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결국, 이런 위헌성과 위험성은 언론 기능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기사열람 차단 청구' 역시 이해관계자 일방의 청구로 이뤄지는 데다가 기사가 차단될 경우 다른 언론사를 통한 진실보도의 통로가 차단되고, 기사에서 드런 사건 자체가 묻힐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해관계자가 국민의 알권리를 차단할 수 있다는 말이다.
언론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가짜뉴스'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는 당위성을 인정받는다고 하더라도 '언론재갈법'이라고 비판받는 이유다.
이 중 서민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특히 입증책임의 전환 규정이 문제된다. 언론사에게 보도에 고의·중과실이 없다는 입증책임을 지울 경우 결국에는 제보자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최근 인터넷 매체 뉴스버스가 제보를 받고 준비해 보도한 ‘검찰총장 청부고발 사주 의혹’이 대표적 사례다. 의혹의 당사자는 보도 내용을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하며 제보자의 등장을 요구하고 있다. 어느새 의혹은 ‘제보자 색출’로 프레임이 전환되는 모습이다.
법조계에선 이 조항에 대해 손해를 주장하는 자가 이를 입증한다는 기본적 입증책임 원칙에 반한다고 지적한다. 손해배상 청구 등 일반적인 민사 소송에서는 원고(피해를 주장하는 자)가 입증 책임을 진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원고(기사로 인한 손해를 주장하는 자)가 기사의 고의·과실을 입증하고, 이를 언론사가 반박하는 구조였는데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으로 인해 언론사가 입증 책임을 전적으로 부담하게 되고, 원고는 추상적으로 반박하는 (입증 책임이 교체되는) 구조가 된다”며 “이는(개정안의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 민사상 대원칙을 거스르는 조항”이라고 비판했다.
법무법인 김앤컴퍼니의 김신 변호사는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에서 ‘추정’이라는 것은 손해를 주장하는 자에 대한 ‘고의·중과실’ 추정까지 인정한다는 것으로 그만큼 ‘고의·중과실’ 인정 범위를 상당히 넓힌 것”이라며 “사실상 언론사에 ‘고의·중과실’이 있다는 것을 전제한 조항”이라고 설명했다. ‘고의·중과실’을 판단하는 기준 자체도 모호한 상황에, 고의가 없더라도 부주의 또는 물적 증거 부족 등에 의한 오보까지 ‘고의·중과실’ 기사로 전제된다는 얘기다.
김 변호사는 “이 조항으로 인해 언론사는 (명백하지 않아도) ‘추정’되는 고의·과실까지 완전히 부인할 수 있을 만큼의 상당한 입증 책임을 져야 하는데, 이는 언론의 취재 행위를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내에서 한 기자가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