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날도 덥고 손님도 없고, 요즘은 웬만하면 저녁 9시 전에는 장사를 파하지요. 근데 우쨋든 대구가 인자 크게 한 번 바끼야 됩니데이. 국민의힘 텃밭은 옛날 소리 아인교. 이제 진짜 바끼야죠."
지난 11일 고령의 국밥집 여주인이 순대국밥을 건네주면서 남이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1년 전만 해도 손님으로 붐볐다는 이곳은 한창 영업시간에도 인적이 뜸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여파다. 코로나19 무방비와 자영업자 위기는 국민의힘이 문재인정부를 비판할 때 가장 많이 쓰는 구호다. 하지만 여주인은 국민의힘이 아닌 더불어민주당이 정권을 잡아야 서민이 산다고 했다. 국민의힘을 뽑아도 지역을 위해 한 일이 없다는 말이었다.
'보수 아성'에서 변화 바람…"지역 위해 뭐 했나"
다만, 이런 풍경은 적어도 보수의 심장부로 불리는 대구에서는 아직 어색하다. 식당이 자리한 대구 북구 복현오거리는 경북대에서 도보로 10분 거리다. 대구서 감히 누가 '국민의힘' 네 글자를 부정할 것인가. 어떤 선거든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던 대구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2017년 19대 대선에서도 대구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에게 45.4%를 몰아줬다(전국 득표율 1위는 경북 48.6%). 21대 총선에선 12석 중 11석을 미래통합당이 휩쓸었다.(나머지 1석은 수성을의 무소속 홍준표 의원). 총선에서 민주당이 당선되지 못한 지역은 대구와 경북이 '유이'하다.
그러나 이곳 대구에서도 변화의 바람은 감지된다. 국민의힘만 주구장창 지지할 수 없다는 말이다. 칠성시장은 4~5년 전만 해도 포장마차들이 성황을 이뤘다. 요즘은 예전만 못하다. 40대 무리가 있길래 말을 청하고자 명함을 건네자마자 정치 이야기부터 돌아왔다. "문재인을 좋게 보는 사람 누가 있어요? 근데 대구가 이리 된 걸 문재인 탓만 하면 완전 사기꾼이라요. 지금 대구엔 산업이 없어요. 대기업들은 다 서울에 있고, 대구는 돈만 1등으로 쓰지 버는 건 꼴찌라요. 대구 잘 살게 해달라고 대대로 국민의힘 의원들 뽑은 건데, 지금까지 한 게 없어요. 국민 팔아서 싸움만 해댔지. 근데 나는 싸우라고 한 적 없거든요. 그 꼴 보자면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라요."
2030 세대는 보수 성향…"홍준표·윤석열 누가 되든 밀어준다"
다만 국민의힘에 대한 비판 정서가 높다고 해서 대구 사람들이 민주당 지지로 돌아선 것은 아니다. 국민의힘 지지자도 여전히 많았다. 국민의힘이 싫어진 것 뿐이지 특별히 민주당 지지가 늘어난 건 아니라는 설명. 특히 2030 세대에서 이런 성향이 강했다. 경북대에서 만난 20대 김모씨는 "국민의힘이 그간 제대로 역할을 못한 건 야당 위치에 머물렀기 때문이고, 일할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며 "정권을 탈환해 국민의힘 정부와 당이 힘을 합쳐야 한다"라고 말했다. 동성로에서 만난 박모씨는 "국민의힘이 이길 수 있다면 홍준표나 윤석열이라고 해서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누가 되든 밀어줄 것"이라고 했다.
이는 민주당 유력주자인 이재명 후보에 대한 평가와도 궤를 같이했다. 이 후보의 고향인 안동에서는 '이재명이 무슨 안동 사람'이냐라는 말까지 공공연히 흘러나왔다. 그간 이 후보가 강조한 'TK 인연'을 깡그리 외면하는 뉘앙스다. 안동시청 앞 문화의광장에서 만난 30대 오모씨는 "이재명이 안동사람이라 TK에서 표가 많이 나올 거라고들 하던데, (이재명은) 선거 때만 안동 찾는 것일 뿐"이라면서 "내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 동네는 그렇게 만만하게 볼 데가 아니다"고 말했다.
"윤석열 어렵다, 홍준표 싫다, 유승민 모른다"
국민의힘 후보들에 대한 TK 민심도 주목된다. 국민의힘 무능력을 비판한 실망감은 야당 후보에 대한 평가에서도 느껴졌다. 문화의거리에서 만난 정모씨는 "윤석열로는 이재명을 이기기 어렵다"며 "대구·경북 사람들은 곧 죽어도 명분하고 의리인데, 윤석열은 정통 보수 후보가 아니다"고 했다. 홍준표 후보가 윤 후보를 대체할 지도 미지수다. 칠성시장에서 대화한 강모씨는 "이재명이 싫지만 같은 이유로 홍준표도 싫다"며 "윤석열과 홍준표를 절반씩 섞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유승민 후보에 대해선 "잘 모른다"라는 말로 애써 외면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2대에 걸쳐 대구에서 정치를 한 '적자'지만 아직 '박근혜 배신자'라는 낙인이 강해보였다.
역대 대통령이 영남에서만 배출된 건 아니다. 하지만 TK 민심을 얻지 못하면 대선에서 승리하는 게 쉽지 않았다. 반대로 이곳 민심을 얻으면 최소한 박빙의 승부를 벌였다. 역대 대선 결과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틀 동안 대구와 경북을 돌면서 만난 시민들은 대화 끝에 반드시 이런 말을 덧붙였다. "TK 민심 심상치 않습니데이."
12일 오후 경상북도 안동시청 앞 문화의거리에서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대구=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