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새나 기자] 일본의 사실상 차기 총리를 결정하는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가 이달 말 2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출마를 선언한 주요 후보 모두가 개헌 의사를 내비쳤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역사 문제에서도 보수적인 입장을 유지해 누가 당선되더라도 한일관계의 냉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12일(현지시간) 산케이신문은 고노 다로 행정개혁담당상, 기시다 후미오 전 자민당 정조회장,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 등 출마를 선언한 후보 3명이 모두 헌법 개정 의지를 보였다고 전했다.
여성 후보인 다카이치 전 총무상은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지원을 받으며 자위대 명기를 위한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최근 "시대의 요청에 부응할 수 있는, 일본인의 손에 의한 새로운 일본국 헌법을 제정하겠다"고 말했다. 한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 "중거리 미사일 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중국의 인권 침해 등을 비난하는 국회 결의에도 의욕을 보이고 있다.
기시다 전 정조회장은 "긴급사태 조항 신설이나 자위대 명기 등 자민당이 앞서 제시한 4가지 개헌 항목을 임기 중에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중일 영유권 분쟁 지역인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해상보안청법이나 자위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노 담당상은 출마 당시 개헌에 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방위력을 키우고, 새로운 분야에서 자위대의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가안보 전략을 수정할 것을 주장했다.
다만 누가 차기 총리가 되든 개헌은 쉽지 않다. 일본 헌법 개정은 중의원과 참의원 정원의 3분의2 이상이 각각 동의해야 발의가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국민투표에서 과반이 찬성해야 한다. 하지만 다가오는 총선에선 집권 자민당 의석수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돼 발의 요건조차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다.
기시다 후미오 전 일본 자민당 정조회장. 사진/뉴시스
한일관계가 개선의 물꼬를 트는 것도 당장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후보들 모두 한일 관계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전 총무상은 젊은 시절부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의 책임을 부인하는 등 역사 문제에서 극우 성향을 드러내 왔다. 특히 A급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를 지속적으로 참배하는 대표적인 우익 관료다.
기시다 전 정조회장은 아베 내각에서 오랜 기간 외무상을 지냈으며 지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실무를 담당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일본은 (합의를) 이행하고 있다. 한국도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노 담당상은 아베 내각에서 방위상과 외무상을 지낸 고노 담당상 역시 "과거사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는 기존 일본 정부의 입장을 따를 가능성이 크다.
특히 그는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했던 '고노 담화'의 주인공 고노 요헤이 전 중의원 의장의 장남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10일 출마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 "자민당 정권이 계승해 온 역사 인식을 이어가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했다.
앞서 2019년 7월 한일갈등이 격화됐을 당시 외무상이던 그는 주일본대사를 초치해 취재진 앞에서 무례를 저지른 바 있다.
현재 일본 유권자의 지지도가 가장 높은 인물은 고노 담당상이다. 아사히신문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새 총재에 가장 적합한 인물 1위로 고노 담당상이 33%의 지지율을 받으며 1위에 올랐다. 전날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도 여론조사도 마찬가지다.
고노 담당상은 스가 내각에서 코로나19 백신 담당 업무를 담당해 젊은층에 지명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동료 의원들과의 관계성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당과 다소 거리가 있는 주장을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의원 내각제인 일본에서는 집권당의 총재가 총리가 된다. 즉, 자민당 총재 선거는 일본의 총리를 결정하는 선거다. 자민당 총재 선거는 소속 의원과 지방당원 각 383표씩 766표의 투표로 결정된다. 여론 지지율이 높고, 소장파 의원들의 지지를 받는 고노 담당상의 당선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얻지 못하면 1, 2위 후보가 결선 투표에 들어가게 돼 사실상 의원 투표로 결정된다. 이로 인해 기시다가 역전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일본 유권자 중 절반 이상은 차기 총리가 아베 전 총리나 스가 총리와는 다른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58%는 전 정부를 계승해서는 안 된다고 대답했다.
고노 다로 일본 행정개혁·규제개혁상. 사진/뉴시스
권새나 기자 inn1374@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