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9월16일 저녁 여의도에서 약속을 마치고 지하철을 타러 가다 국회의사당역 3번 입구를 전경들이 에워싼 것을 보고 놀랐다. 뭔가 큰 시위가 벌어진 줄 알았는데 주변은 조용했다. 수십명 전경의 위압적 시선에 주눅 들어 어깨를 움츠리고 역으로 들어갔다. 집에 와 뉴스를 보니 바로 그 자리에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하고 세상을 떠난 자영업자들을 추모하는 분향소가 설치됐다고 한다. 그런 줄 알았으면 분향이라도 하고 올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코로나19가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목숨을 끊은 소상공인이 20명을 넘는다고 한다. 조용히 세상을 떠난 소상공인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4차에 걸친 대유행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하면서 영업제한 조치로 수입이 감소한 소상공인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는 것이다.
참 슬프고 안타깝다. 생때와 같은 목숨이 이렇게 쉽게 사그라지는 일이 21세기 대한민국 대명천지에 벌어지고 있다니 믿을 수 없다. 그것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제일 중요시한다는 진보 정부에서 말이다. 옛날에 농사로 먹고 살던 시절에 흉년이 들어 기근이 발생하면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었다고 한다. 지금은 먹을 것이 돈이다. 돈이 없어 죽는다는 것은 식량이 없어 굶어 죽는다는 것과 같다.
소상공인은 영업이 안 되는 순간 손실을 보고 시작한다. 임대료, 인건비, 공과금과 같은 고정비는 영업하건 안하건 지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사를 안 해도 매달 나가는 돈이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이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먹고 살아야 한다. 자영업자란 자기 인건비를 따먹고 사는 직종이다. 영업을 안 하면 자기 임금도 못 받는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소상공인들은 다달이 생활비, 교육비, 보험료로 몇백만원이 필요하다. 집합제한이 길어지면 생활 자체가 위협받게 된다.
벌어서 감당하지 못하면 빚을 내야 한다. 하지만 빚내기가 만만치 않다. 은행은 담보나 신용을 요구하니 영세 소상공인에게 문턱이 높다. 긴급대출로 받은 정책자금은 몇 달 버틸 정도에 불과하다. 결국은 남에게 빌리거나 불법 사채를 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감염병 대유행이 1년 7개월을 넘어가며 더 이상 빌릴 곳도 없다. 원금과 이자는 쌓이는데 코로나는 언제 끝날지 모른다. 가진 돈 빌린 돈 다 떨어져 막판에 몰린 소상공인이 희망을 버리고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다. 이런 소상공인이 늘어나고 있지만 사회적 관심은 차갑기만 하다. 분향도 마음대로 못하게 하니.
사람이 돈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돈이 무섭다. 월급쟁이도 직장을 그만두는 순간 월급이 안 나오면 난감하다. 매달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다. 직장이 없으니 은행 대출도 쉽지 않다. 동료나 친구에게 급전을 융통하는 것도 한두 번이다. 새로 직장을 잡지 않으면 자영업을 해야 한다. 먹고 살려니 장사에 나서는 것이다. 이처럼 소상공인은 경제적 약자의 안전망이다. 그런데 거기서 몰락하면 더 이상 찾아갈 안전망이 없다. 저 세상밖에.
이처럼 사회안전망이 붕괴하는데 아무도 구제에 나서지 않는다. 재난지원금은 5차에 걸쳐 제공되고 있지만 그때그때 기준이 달라 애간장만 태운다. 한 번에 주는 금액은 한 달 임대료에도 못 미친다. 찔끔찔끔 주면서 생색은 엄청 낸다. 재난지원금 명칭을 보면 거창하다. 새희망자금, 버팀목자금, 버티목자금플러스, 희망회복자금 등등. 앞으로 나올 6차 지원금에는 무슨 이름을 붙일지 궁금하다.
가장 최근의 5차 재난지원금은 코미디 수준이다. 전국민 80%를 준다 했다 88%에서 끊어졌다. 이의 제기가 쏟아지니 90%로 올라갔다. 돈이 많은 지자체는 자기네 예산으로 100% 준다고 한다.
국민 모두에게 재난지원금을 주자고 하니 재정을 책임진 경제부총리는 나라 곳간이 비어가서 안 된다고 한다. 이를 질타하는 여당 정치인은 곳간을 쟁여 어디에 쓰느냐고 한다. 소상공인을 위해 과감히 곳간을 풀자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집합금지 조치로 손해 본 것을 보상해 주겠다는 손실보상제는 없느니만 못하다. 이미 시기를 놓쳤다. 다 망하고 죽고 난 다음에 보상받아야 무슨 소용이 있는가. 마치 세월호가 침몰해 사람이 죽어가는데 어떻게 구출할 것인가를 놓고 논쟁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것과 같다.
백성이 굶어 죽어 가는데 나라 곳간을 쌓아둬 무엇에 쓰겠는가. 흉년에 구휼미를 풀면서 부자에게도 똑같이 주자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정치인들이 말로는 ‘기본’, ‘보편’, ‘무상’을 내걸며 퍼주기 경쟁을 하지만 실제로는 가난한 사람보다 부자를 위한 정치를 하고 있다.
코로나19 감염병이 천재지변이라 할지라도 사회적 약자인 소상공인들이 생업을 버리고 세상을 등지는 일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게 이상하다. 죽어가는 소상공인들에게 생명줄과 같은 자금을 왜 과감히 안 푸느냐고 물으면 정부를 비판한다고 곡해한다. 이런 가운데 부동산 투자로 떼돈을 번 사람들은 명품을 사러 새벽부터 줄을 선다. 경기도 어디에서는 공공개발로 몇천억원의 돈을 번 사람들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지 간에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는건지 모르겠다.
우리는 늘 OECD 국가 중에 몇 등 한다고 자랑한다. 그런 비교를 왜 소상공인 지원에서는 안하는지 묻고 싶다. 미국, 캐나다, 일본 등지에서 자영업을 하는 교포들이 우리 소상공인 사정을 듣고 안타깝다고 한다. 본인들이 고국에서 장사했으면 벌써 문 닫고 세상 하직했을 것이라 한다. 이민가기 잘했다는 소리를 왜 들어야 하는지 갑갑만 하다.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K-방역’에 숨은 공로자이며 억울한 희생자인 소상공인을 위한 ‘K-지원’은 왜 없는지 궁금하다.
우리 국민이 참 유순하다. 누구도 대놓고 반발하거나 저항하지 않는다. 선진국과 같으면 벌써 인권 유린이나 영업권 침해로 집단 난동이 일어났을 거다. 인색하고 야박한 우리 사회에 대놓고 원망도 못 하고 그냥 조용히 혼자 한을 품고 세상을 등진 소상공인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아프다. 부디 저 하늘 나라에서 평안히 안식하시기를 기원하며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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