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종화기자] "우리도 어렵다. 우리가 살아야 협력업체도 사는 것 아니냐!"
지난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건설회관. 국내 시공능력 20위권 이내의 메이저 건설사인 A사의 한 간부가 협력업체들에 대한 지원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불같이 화를 냈다.
그동안 협력업체를 위해 나름 노력을 해왔고, 현금성결제비율도 90%를 넘는데, 대한건설협회가 또 `상생협력` 방안을 논의하자고 하자 화가 났던 것이다.
지난 3월25일 공정거래위원회와 `상생협력 및 공정거래협약`을 체결한 A사의 입장에서는 불과 5개월만에 다시 상생협력 논의를 한다는 게 번거로웠고, 무엇보다 남의 사정에 신경쓸 만큼 회사 사정이 여의치 않기도 하다.
이날 회의를 진행한 이충렬 대한건설협회 건설진흥실장은 연신 땀을 닦으며 안절부절했다.
`빅20` 건설사들을 한 자리에 모으기도 쉽지 않았다. 협회에서 논의하자는 안건은 뻔한데 더 이상 내놓을 만한 방안이 없는데다 `남(?)`지원할 여유도 없다는 게 대부분 기업들 생각이니 그럴만도 했다.
18일 대한건설협회가 발표한 `원·하도급자간 상생협력 증진을 위한 4대 과제 10개 중점 추진사항`이 합의되기까지는 이처럼 적지 않은 진통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 13일 오후 건설회관에서 열린 2차 임원회의에서는 1차 실무진 회의 때와 달리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실질적인 대안들이 논의됐고, 개략적인 합의문도 마련됐다.
협력업체를 담당하는 실무부서장들이 회의석상에서는 불만들을 쏟아냈지만, 회사에 돌아가서는 2차 회의에 참석할 담당 임원들에게 적극적으로 협력업체 지원안을 건의했기 때문이다.
B사의 한 간부는 "어렵긴 하지만 우리가 낫지 않겠느냐"며 "협력업체들의 경영이 안정되는 것이 결국 우리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사실에 모두 공감했다"고 말했다. 협력업체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외주담당 실무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 번의 회의에서는 많은 지원안들을 놓고 설전이 벌어졌다. `빅20` 건설사들의 가장 큰 반발을 불러왔던 것은 "하도급대금 지급기일을 단축하자"는 안이었다.
"안 주는 것이 문제지 법정기일인 15일 이내 주면 문제될 것 없다", "그런 안건은 논의할 것이 못된다"는 의견이 많았다.
원청업체가 협력업체에 정기적으로 대금을 지급하는 주기를 말하는 `기성 주기`를 앞당기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보통 건설사들은 전월의 기성분을 다음달에 주는데 기성일이 25일면 18일로 일주일 정도 당겨서 지급하자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대도 만만찮았다. "앞당겨 주는 효과는 있겠지만 초창기 1~2회 정도만 효과를 볼 뿐 나중에는 부작용만 나타날 것"이란 의견이 우세했다.
결국 하도급대금 지급기일 단축안은 없던 일로 하고 대신 하도급대금의 현금성지급비율을 업체 사정에 따라 10~20% 올려주는 것으로 합의했다.
또 분기나 반기, 매월 등 일정하지 않은 기성주기를 매월 1회로 확정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이충렬 실장은 "솔직히 처음에는 업체들의 반발이 적지 않았다. 업체들의 사정도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이 실장은 그러나 "`4대 과제 10대 중점추진사항`에 다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상당히 많은 지원안들이 논의됐다"며 "대형업체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협력사들을 담당하는 실무자들인 만큼 협력사들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뉴스토마토 김종화 기자 just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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