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재훈·황준익 기자] 탄소 저감 운동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와중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국내 시장에서는 '요소수 대란'이라는 웃지 못할 사건이 발생했다. 대규모 사태로 번진 요소수 품귀 현상이 디젤 차량의 선호도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 시장의 연료별 점유율을 보면 디젤차 비중은 매년 하락세다.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신차 등록 중 디젤차 비중은 2015년 52.5% 2016년 47.9%, 2017년 44.8%, 2018년 43.4%, 2019년 36.6%, 지난해 31.2%까지 매년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들어서도 1~10월 누적 기준 점유율 비중이 25.4%에 그친 상태다.
이같은 현상은 세단 차종에서 두드러진다. 특히 국산 세단 시장에서는 디젤차가 자취를 감췄다. 현대차는 지난 2018년 쏘나타와 그랜저 디젤 모델 생산을 중단했다. 기아(000270)는 2019년 K5, 2020년 K7 디젤을 단종했다. 한국지엠과 르노삼성도 마찬가지다. 한국지엠은 지난해 쉐보레 말리부 디젤 모델 생산을 중단했으며 르노삼성은 2018년 SM3, 2019년 SM6 디젤 모델을 각각 단종시켰다.
수입 디젤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19년 30.3%에서 지난해 27.7%, 올해는 14.2%까지 하락했다. 수입차는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누적 기준 1만5205대의 디젤 세단을 판매했다. 2019년과 지난해 같은 기간 각각 4만4665대, 3만7037대로 매년 줄고는 있지만 국산차와 달리 명맥은 유지하고 있다.
디젤차는 가솔린차보다 질소산화물을 23배 이상 배출하는 것 알려졌다. 따라서 디젤 차량 배기가스에서 질소산화물을 저감하는 장치인 SCR 시스템에 사용되는 요소수가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디젤 승용차는 2018년, 상용차(화물차)는 2019년부터 요소수를 반드시 넣도록 설계돼 있다.
경기도 의왕컨테이너 물류기지의 한 주유소에 요소수 공급 중단을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있다. 사진/뉴시스
전문가들은 승용차는 상용차와 달리 적은 양의 요소수를 필요로 하나 소비자 불안감이 높아진 상황에서 차량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어렵다고 진단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요소수 부족 현상이 나타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소비자의 디젤차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됐다"며 "친환경차 전환에 보다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고차 시장에서도 디젤 중고차 가격 하락세가 감지된다. AJ셀카에 따르면 이달 들어 중고 디젤차 전체 거래량은 전월 대비 19% 감소했으며 전체 평균 시세는 약 2% 하락했다. 중고 세단 최다 매물 모델인 '그랜저 IG'와 '아반떼 AD' 디젤 모델은 전월대비 시세가 각각 8%, 2% 감소했다. SUV 디젤 모델 중 '더 뉴 쏘렌토', '싼타페 TM', '올 뉴 투싼'도 각각 11%, 8%, 10% 하락세를 보였다.
안인성 AJ셀카 온라인사업본부장은 "국내 산업계가 요소수 대란과 친환경에 대한 소비자 인식 변화까지 겪고 있는 가운데 중고차 시장에서도 디젤차 중심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연비에 강점을 가진 디젤차는 한때 '클린 디젤'로도 불렸으나 배기가스 배출 문제 등이 잇따라 발생하며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특히 디젤차는 2015년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사건, 일명 '디젤 게이트' 사태가 발생하면서 전세계적으로 미세먼지 배출 주범으로 몰렸으며 국내에서도 지난 2018년 BMW 차량이 배기가스 재순환장치(EGR) 결함으로 화재가 발생한데다 이번 요소수 사태까지 이어지며 디젤차 퇴출에 한층 속도가 붙고 있는 상황이다.
각국의 탄소 중립 선언도 디젤차 종말과 궤를 같이한다. 유럽연합(EU)은 지난 7월 '핏 포 55' 정책을 발표했다. 27개 회원국이 2035년까지 자동차산업 분야 탄소배출을 100% 감축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이보다 빠른 202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금지하고 영국도 2030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중단한다. 우리나라는 다소 늦은 2050년까지 수송분야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조재훈·황준익 기자 cjh125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