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이 정확히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여야의 피말리는 승부가 예상되는 가운데 유권자들은 하나같이 "찍을 후보가 없다"며 역대 최악의 대선이라고 한숨을 내쉰다. 각종 의혹과 비방이 난무하고, 견고해진 진영논리는 상대에 대한 적개심을 부추기고 있다. 대한민국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들떠야 할 대선이 되레 국민들 걱정 속에 정치 혐오로까지 비화되는 흐름이다. 이래서는 또 다시 분열과 갈등만 반복될 뿐이다. 걱정과 한숨으로 가득한 민심을 살폈다. 전국을 서울·경기·인천(수도권), 부산·울산·경남(PK), 대구·경북(TK), 광주·전남·전북(호남), 충남·충북·세종(충청), 강원 등 6개 권역으로 나누고 지난 27일과 28일, 주말 이틀 동안 지역별 민심을 쫓았다. (편집자)
[부산·울산·경남=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이번 선거만큼 사람들이 정치 이야기를 안 하는 적은 처음입니대이."
부산에서만 50년가량 택시를 몰았다는 김모씨(70대·남성)는 이번 대선의 풍경이 당황스럽다. 김씨는 역대 대선 때마다 승객들과 일상적으로 정치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정치적 의사를 쉽게 밝히는 중장년층조차 이번 대선에 대해선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제가예. 고등학교 졸업하고 택시 일을 바로 시작했거든예. 근데 장난치는 게 아니고, 두 후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을 한 명도 못봤심니더. 이래 조용한 대선은 처음 봅니더."
이재명·윤석열 모두에 '냉소'…"거서 건데, 마 투표 안 할랍니더"
대선을 100여일 앞두고 주말 바닥 민심을 청취하기 위해 부산·울산·경남(PK)을 찾은 찾은 기자 역시 대선 이야기를 꺼리는 시민들을 다수 목격했다.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고래고기·꼼장어를 판매하는 한 상인(70대·여성)은 '이번 대선에서 지지하는 후보가 있냐'는 질문에 한참을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 상인은 "각자 마음에는 뽑아야지 하는 후보가 있어도 요즘 말을 잘 안할낍니더. 친척들끼리 모였을 때도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됐어가, 그래도 (대선 이야기가)나오기는 하는데 별로 안 좋아하는 분위기입니더"라고 전했다. 이 상인은 마지막까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말하지 않았다. "다 마음에 안 듭니더"만 반복할 뿐이었다.
이런 반응은 세대를 가리지 않고 이어졌다. 경상남도 진주시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모씨(29·남성)도 "지지하는 후보가 없습니더"라고 잘라 말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희망을 찾지 못했다는 설명이었다. 김씨는 "젊은 사람들은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공정한 사회를 원하는데, 누가 되든 그런 사회가 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더"라고 극히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씨는 내년 대선에 투표를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장화 도매업을 하는 한 상인(90대·남성)도 "나는 투표를 안 할랍니더. 아이고 마, 둘 다 거서 거기인데 누굴 뽑아도 나라 참 잘 돌아가겠네예"라고 비꼬았다. 그가 대선에서 기권표를 행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산에 위치한 자갈치시장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장사하는 사람들 얼마나 힘든지 압니꺼"…치솟는 집값에 한숨만
정치 혐오와 무관심이 강한 상황에서도 PK는 그래도 윤 후보 지지세가 강했다. 경상남도 사천 공장에서 근무한다는 박모씨(33·남성)는 내년 대선에서 윤 후보에게 한 표를 행사하겠다고 했다. 박씨는 "민주당 정권이 부동산 가격을 너무 많이 올렸고, 사는 것도 퍽퍽해졌습니더. 그래선가 정권교체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꼬예"라고 말했다.
박씨는 서울로 상경해 사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하지만 최근 무섭게 치솟는 부동산 가격을 보고, '이대로는 서울에서 살 수 없다'는 걱정이 밀려왔다고 했다. 억대 대출을 받아 작은 집 하나를 구매했지만 이제는 대출이자가 걱정이다. 최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한 데 이어 추가 인상 가능성까지 시사한 상태다. 박씨는 "대출을 풀로 받은 사람들은 이제 늘어난 이자부터 걱정입니더"라고 한숨을 쉬었다. 박씨는 이런 상황의 원흉을 민주당 정부라고 보고,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산에 위치한 자갈치시장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자갈치 시장에서 천막 도매업을 하는 한 상인(60대·남성)도 윤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같이 장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 줄 압니꺼. 이게 다 경제를 하나도 모르는 민주당이 정권을 잡아서 그런거지예"라고 현 정부에 대한 강한 비토를 쏟아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들어놓은 경제·복지 정책의 혜택을 민주당이 누리고 있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또 이 상인은 이 후보를 향해 "살인자 집안에서 대통령이 나와서 쓰겠습니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재명 조카가 사람을 죽였다 안캅니까. 형수 욕설부터 시작해서 그 집안은 아주 더러운 집안입니더"라고 노골적인 불쾌감도 드러냈다. 이 후보는 과거 모녀 살인을 저지른 조카를 변호한 사실이 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 후보의 조카 김씨는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와 그의 모친을 칼로 찔러 사망케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 후보는 변호 과정에서 김씨의 심신미약을 주장하는가 하면 이를 데이트폭력으로 표현했다가 파장이 일자, 이에 대해 거듭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재명 조카 변호 왜 해갖고…윤석열은 김종인에 끌려다니기만"
앞서 부산의 정치적 무관심을 전했던 택시 기사도 "이재명이는 조카 변호를 왜 해가지고 그런답니까"라고 꼬집었다. 민주당이 배출한 광역단체장(안희정·박원순·오거돈)의 성범죄를 일일이 언급하며 "그 당은 자기들은 도덕적이라고 카더니 왜 여자들한테 자꾸 그런답니까"라고 기자에게 되묻기도 했다. 그는 "친구들하고 술도 한 잔 묵꼬, 솔잖게 얘기해 보면 99%가 윤석열을 찍겠다고 하지예"라면서 "아무래도 보수적인 지역이다 보니까네, 윤석열이가 텔레비전 한 번 나온다카면 찾아서 한 번 더 보게 되고 그럽니더"라고 했다.
하지만 윤 후보가 마음에 다 차진 않는다고 했다. 그는 "친구들도 그렇고, 나도 그카고, 놀랬다 안캅니까. 이재명이가 억수로 똑똑하대예. 머릿속에 든 기 많아서 깜짝 놀랬습니더"라고 수차례 놀라움을 표현했다. 이어 "근데 윤석열이는 뭔 원고가 없다고 2분을 도리질만 해 싸는지”라고 한심하다는 투로 이야기했다. 윤 후보는 지난 22일 한 언론사 행사에서 대본이 적힌 프롬프터가 작동하지 않자 약 2분간 침묵을 이어간 바 있다. 반면 이 후보는 프롬프터 없이도 유창하게 자신의 비전과 정책 등을 소개했다.
또 "윤석열이는 국정운영 경험도 그렇고, 정치경험도 없어가, 좀 그렇기는 하대예"라며 "선대위 구성하는 것 가지고도 그 80세 먹은 노인네(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하나 못 데리고 온다캅니까"라고 답답해했다. 윤 후보는 지난 26일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 체제에 힘을 실으며 김 전 비대위원장과 사실상 결별했다. 김 전 위원장과의 이견으로 선대위 출범이 지연되는 것에 대한 답답함의 일환이었지만, 진통이 거듭되면서 리더십에 상처가 난 것만은 분명했다.
부산 남포동에 위치한 번화가 입구. 사진/뉴스토마토
숨은 이재명 지지세…"없이 큰 사람, 국정경험도 있어"
이 후보 지지자들도 왕왕 보였다. 부산 남포동에서 노상 철학관을 하고 있는 이모씨(50대·여성)는 "지지하는 후보는 없는데"라며 말을 흐리다가, "그래도 둘 중에는 이재명이가 좀 더 나은 거 같습니더"라고 했다. 보수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국정운영을 해 본 사람이 대통령을 해야 그래도 나라가 안정되지 않겠냐는 이유에서였다. 또 이 후보가 자영업자들을 챙겨왔다는 지점도 언급하며 "이재명이가 그래도 없이 큰 사람이라, 우리 같은 사람들 마음을 알지예. 윤석열이는 뭐, 잘 사는 집안인데 알겠십니꺼"라고 했다.
다만, 이씨는 거듭 "둘 중에 누가 더 괜찮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는 거지, 내가 투표할 때 이재명이를 찍겠다는 건 꼭 아입니더. 그때까지 잘 보다가 결정할 낍니대이"라고 표심을 숨겼다.
자갈치 시장에서 생선을 판매하는 한 상인(50대·남성)도 이 후보를 지지한다고 했다. 이 상인은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됩니더. 여기서 이재명이 지지한다고 하면 아주 이상한 사람 취급당한다 안캅니꺼"라며 "정치도 해본 사람이 해야 하지 않겠습니꺼. 이재명이는 시장도 하고 경기도지사도 하면서 시원시원하이 소신대로 밀어붙이대예. 사람이 그런 것도 있어야제"라고 조용히 속삭였다.
그는 "윤석열이는 선대위 맹드는 거 가지고도 저래 허덕이는데 다 정치를 해본 적이 없어서 그칸 겁니더"라며 "그런 사람한테 나라 맡겨 놓으면 장모나 문고리 권력이 다시 나와서 또 자기들끼리 해먹지 않겠습니꺼. 그 장모가 참 욕심이 그득하던대예"라고 말했다. 이 상인은 대선이 끝나서도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코로나 때문에 자영업자들은 참 힘듭니더. 근데 누가 당선돼도 감옥간다카고, 피바람 불거라카지 않습니꺼. 아이고, 정치가 그래싸서 되겠십니꺼. 국민들은 이래 힘든데"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부산·울산·경남=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