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전보규·김광연 기자]
삼성전자(005930)가 '안정 속 혁신' 추구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큰 폭의 인사를 단행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말 미국 출장 귀국길에서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고 오게 되니 마음이 무겁다"고 표현할 만큼 불확실한 경영환경을 극복하고 동시에 '뉴 삼성'으로 나아가기 위한 쇄신을 선택한 것이다.
7일 삼성전자는 김기남 DS부문 부회장과 김현석 CE부문 사장, 고동진 IM 부문 사장 등 대표이사 3인을 모두 교체하는 내용의 사장단 인사를 발표했다. 재계에서는 대표이사를 유임하고 부사장 이하 임원에서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이들이 삼성전자의 최대 실적을 이끌었고 이 부회장이 여전히 재판을 받고 있다는 점 등에서다.
중동 지역 출장길에 나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출국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이런 전망을 깬 삼성전자의 사장단 인사는 뉴 삼성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감한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이 부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은 지난 10월 고 이건희 회장 1주기 때 뉴 삼성 구축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최근 DS미주총괄과 삼성리서치아메리카를 방문해 "추격이나 뒤따라오는 기업과의 격차를 벌리는 것만으로 거대한 전환기를 헤쳐나갈 수 없다"며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를 개척해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가자"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새로운 삼성의 먹거리 확보를 위해서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달 미국에서 구글 본사를 방문해 순다르 파차이 CEO 등 경영진을 만나 시스템반도체,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자율주행, 플랫폼 혁명 등 차세대 스마트 SW·ICT 혁신 분야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또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을 찾아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컴퓨팅, 모바일 혁명 등 4차 산업혁명 핵심 분야와 관련된 전략을 공류하고 공조 방안을 논의했다.
미국에서 돌아온 지 12일만인 전날에는 아랍에미리트(UAE)로 출국했다. 이 부회장은 UAE와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중동 고위층과 사업 파트너를 만날 것으로 예상된다. 2019년 2월 셰이크 모하메드 빈 자예드 알 나얀 아부다비 왕세제를 만나 5G 등 정보통신 분야 협력을 모색했던 것과 같은 일정을 소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구글 본사에서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순다르 피차이(Sundar Pichai) 구글 CEO.사진/삼성전자
이 부회장이 유럽을 방문할 가능성도 있다. 파운드리 설비의 핵심 장비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확보 차원에서다. 극자외선 노광장비는 네덜란드 ASML이 독점 공급한다.
삼성전자는 이번 인사에서 소비자가전(CE)과 IT·모바일(IT) 사업부문을 SET사업으로 통합하는 조직개편도 단행했다. 통합 리더십 체제를 갖춰 조직간 경계를 뛰어넘는 전사 차원의 시너지 창출과 차별화된 제품·서비스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SET 부문 수장은 부회장으로 승진하는 한종희 CE부문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이 맡게 된다. 한 부회장은 TV 개발 전문가다. 삼성전자는 한 부회장이 사업부간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신사업·신기술 등 미래 먹거리 발굴을 통해 SET사업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DS부문은 반도체 설계 전문가인 경계현 삼성전기 사장이 이끌게 된다. DS부문 System LSI사업부 전략마케팅실장인 박용인 부사장은 사장으로 승진해 DS부문 System LSI사업부장에 오른다. 삼성전자는 박 사장이 메모리 사업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시스템 반도체 사업 성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길 기대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TSMC에 크게 뒤져 있는 비메모리 반도체에 역점을 두기 위해 이런 인사를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며 "(CE와 IM 통합은) 스마트폰이 일상의 중심이 되고 활용이 많아지는 경향을 고려한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사업지원T/F장인 정현호 사장은 부회장이 됐다. 안정적인 사업지원과 미래 준비에 더욱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만간 발표될 삼성전자의 부사장 이하 임원 인사는 젊은 인재를 대거 발탁하는 등 큰 폭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말 부사장-전무 직급을 부사장으로 통합하고 직급별 표준 체류 기간을 폐지하는 인사제도 개편을 통해 젊고 유능한 경영자를 조기 배출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바 있다.
전보규·김광연 기자 jbk880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