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미국이 6일(현지시간)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외교적 보이콧을 공식 발표하면서 올림픽을 종전선언의 무대로 활용하려던 문재인정부의 구상에도 차질이 생겼다. 베이징 무대에서 남북미중 정상이 모여 종전선언을 하는 장면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로서는 한미 간 의견 조율을 바탕으로 북한을 설득하는 데 집중하면서 동시에 종전선언의 새로운 무대를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젠 사키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조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 공산당이 신장 지역에서 계속하는 인종학살과 반인륜범죄, 인권 탄압 등을 고려해 베이징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에 어떠한 외교 사절이나 정부 관리들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적 보이콧이란 선수단은 올림픽에 참가시키되 정부 인사는 불참하는 것을 의미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미국의 보이콧 선언으로, 베이징 올림픽을 종전선언 무대로 활용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의 계기로 삼으려던 정부의 구상도 실현하기 어려워졌다. 정부는 이번 올림픽에서 남북미중 정상이 한 자리에 만나 한반도의 종전을 선언, 평화 정착에 기여하는 '어게인 평창'에 기대를 걸어왔다. 이러한 측면에서 베이징 올림픽은 가장 적절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무대로 꼽혀왔다. 정전선언 당사국인 남북미중 정상들이 자연스럽게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최고의 기회로 인식됐다.
하지만 미국이 바이든 대통령을 포함해 정부 대표단 불참을 선언함에 따라 이 구상의 실현은 사실상 물 건너가게 됐다. 앞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북한이 도쿄 하계올림픽에 일방적으로 불참한 것을 이유로 북한의 이번 올림픽 참가 자격을 박탈했다. 여기에 코로나19 상황까지 겹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중국 방문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종전선언은 무산됐다도 봐도 무방할 정도다.
정부는 베이징 올림픽이라는 특정 무대를 염두에 두고 종전선언을 추진한 것은 아니라며 기존 방식대로 미국 등 주변국가와의 협의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종주 통일부 대변인은 7일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베이징 올림픽이라는 특정 계기를 염두에 두고 종전선언을 추진한 것은 아니다"라며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 상황이 어떤 입장을 다시 정해야 하는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종전선언과 관련해 미국 등 주변국가와의 협의 노력을 계속 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외교적 보이콧에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베이징 올림픽은 종전선언의 여러 무대 중 하나라는 데 주목했다. 종전선언을 위한 효과적인 장소임에는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종전선언 무대 자체가 사라지진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정부가 새로운 종전선언 경로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무대는 판문점이 유력해졌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종전선언을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베이징 올림픽이라는 중요한 무대를 잃은 아쉬움이 있지만 활용하려는 무대가 하나 없어진 것일 뿐"이라며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는 베이징 올림픽과 무관하게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이 외교적인 접촉과 대화를 통해서 좀 더 적극적인 종전선언으로 가는 경로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한미 간에 어느 정도 조율이 됐으니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북한과 대화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구체적으로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 정상이 판문점에 모여 종전을 선언할 가능성도 유력하게 거론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베이징에서 종전선언을 추진하는 것이 어렵다면 판문점에서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된다"며 "시점은 내년 2월, 4월로 예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올림픽이 개최되면 분쟁 국가들은 휴전에 들어가기 때문에 이를 감안해 종전선언을 추진한다면 어느 정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