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올해 1월 개정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관련 대통령령이 시행됐다. 경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폐지되고, 경찰이 1차적 수사권과 수사종결권도 갖게 되는 등 법 제정 이후 66년 만에 검·경 관계가 재정립됐다. 개정 검찰청법 시행에 따라 검찰이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대상은 6대 범죄에 한정된다. 하지만 이러한 형사사법 시스템의 변화 후 약 1년간 수사 주체와 대상을 두고 혼란이 발생하는 등 문제들이 제기됐다. 시행 초기에 드러난 과제를 점검하고, 입법 취지에 맞게 체계가 안착하도록 개선 방안을 살펴봤다. (편집자주)
'검·경 수사권 조정' 시행 1년, 수사 현장에서 발견되는 실무상 혼선 사례가 심각한 수준이다. 일반 형사사건부터 대규모 권력형비리 사건에서 고루 발견되고 있다. 형사소송법 개정에 따른 수사권 조정 시행 전부터 예견됐던 혼란한 상황이 현실로 확인되고 있는 셈이다. 검·경간 특정 사건에 대한 처리를 두고 불필요한 절차가 반복되기도 한다.
최근 벌어진 여러 살인 사건에 대한 수사와 처리는 검경 수사권 조정의 영향을 명백히 보여준다. 이별 통보한 애인을 흉기로 수차례 찌른 뒤 19층 아파트에서 떨어뜨린 A씨 사건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A씨를 지난 13일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이별을 통보한 연인을 흉기로 찌르고 집 베란다 밖으로 내던진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이 지난달 19일 오후 본인의 구속심사 이후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검찰은 경찰에서 사건을 넘겨 받은 뒤 보완수사 도중 A씨 모발에서 마약을 찾아냈지만 마약 투약 여부와 살인 영향 여부 등에 대해 경찰에 다시 보완수사를 요구했다. 올해 시작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른 조치다.
검찰도 마약 사건을 수사할 수 있지만 이 경우엔 해당이 안 된다. 검찰은 올해 1월1일 시행된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에 따라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 6대 범죄와 경찰 공무원 범죄만 직접 수사 할 수 있다.
검찰이 수사할 수 있는 마약 사건은 경제범죄에 포함되는데 수출입이나 수출입 목적 소지·소유로 한정된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중 확인된 마약류 관련 범죄는 검사의 수사 개시 범위 해당 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 있어 보완 수사를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검찰 시절 강력부에서 오래 근무한 한 변호사는 "마약사건의 경우 범죄 특성상 은밀하지만 일정한 죄증이 확보된 경우 신속하게 수사해야 하는데, 절차적 문제 때문이 검찰이 인지한 마약 정황을 경찰이 다시 수사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마약사범들에게 죄증을 인멸하거나 도주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문제는 이런 오류들이 앞으로 계속 반복될 것이고 그 피해는 사건 당사자부터 결국에는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대선 정국을 강타한 '대장동 개발 특혜·로비 의혹' 사건 실무에서도 검·경간 엇박자가 보였다. 검찰은 지난 9월29일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유 본부장이 휴대전화를 창 밖으로 던졌는지 여부가 논란이었다.
당시 검찰은 CC(폐쇄회로)TV 확인 결과 압수수색 전후로 창문이 열리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도 10월5일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휴대폰을 창 밖으로 던졌다느니, 검사를 사전에 두세 시간 만났다느니 하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중앙지검에서 강하게 발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기남부경찰청은 10월8일 이 휴대전화를 확보했다고 발표하면서 검찰이 머쓱해졌다. 경찰은 시민단체로부터 유 전 본부장의 증거인멸 의혹 고발 사건을 접수해 주변 CCTV를 확인하고 전화기를 가져간 사람의 동선을 확인했다.
경찰은 해당 포렌식 자료를 검찰과 공유하기로 하고 지난달 수사협의체 회의에서 대장동 수사 범위도 나눴다. 이후 대장동 사업자 선정 특혜 사건 등 세 건을 검찰로 이송했다. 검찰은 최윤길 전 성남시의회 의장 사건 등 세 건을 경찰로 넘겼다. 검경이 각자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지 두달여만이다.
대장동 개발특혜 의혹 사건과 비슷한 과거 기획부동산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과 경찰들은 이같은 검경 엇박자를 심히 우려했다. 수도권 소재 경찰청에 근무 중인 한 경감은 "간단히 말하면 경찰의 기능은 공소를 위해 검찰이 요구하는 증거물과 증인 확보를 하는 것인데, 현재 경찰과 검찰이 각자 수사를 하고 있고, 모종의 경쟁심리까지 작용하면서 수사 효율성이 오히려 떨어지고 있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같은 지적을 의식한 것인지 검찰과 경찰은 상호 수사권과 관련한 협의를 가질 때마다 언론에 적극 알리고 있다. 그러나 직접적인 실무협의 보다는 보여주기식 협의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대검에 따르면, 양 기관은 올해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10여회 정도 실무협의를 가졌다.
서울중앙지검 청사. 사진/뉴스토마토
협조 경험 축적·법 개정 병행을
학계에선 검·경의 긴밀한 협조와 수사 개시 범위 관련 법 개정을 병행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어디부터 어디까지 누가 맡을지를 계속 협의해 구체적인 사안이 있을 때 해결하는 식으로 할 수밖에 없다"며 "실무적인 경험이 축적되면서 양 기관 간 업무 협조 노하우가 쌓이면서 문제를 줄여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곽 교수는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법으로 (업무 범위를) 규정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하겠지만 당장은 어려우니 최대한 서로 협조해 수사하고 문제가 있다면 법 개정 노력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