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동성 부부가 직장가입자 피부양자 지위 박탈이 부당하다며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이주영)는 7일 소성욱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보험료 부과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현행법 체계상 동성인 원고와 김용민씨의 사실혼 관계를 평가하기는 어렵다"며 "이 같은 취지에서 한 보험료 부과처분은 적법하다"고 소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동성 사실혼 피부양자 자격 무효화
동성 부부인 소씨와 김씨는 지난 2019년 5월 결혼식을 했다. 현행법상 혼인신고는 못했지만 동성부부도 사실혼 배우자로 직장가입자 피부양자에 해당하는지 공단에 문의해 '사실혼 배우자도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에 해당한다'는 회신을 받았다. 이에 2020년 2월 공단에 소씨가 김씨 배우자로서 직장가입자 피부양자로 신고해 자격을 얻었다.
이후 공단은 그해 10월 소씨의 피부양자 자격을 무효화하고 김씨를 지역가입자로 보는 건강보험료와 장기요양보험료를 부과했다. 이에 소씨 부부는 지난해 2월 공단의 처분을 취소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현행법상 혼인신고가 불가능한 동성 연인 간 생활공동체를 사실혼 관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혼인이란 민법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판례, 그리고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을 모두 모아 보더라도 여전히 남녀의 결합을 그 근 본요소로 한다고 판단된다"며 "이를 동성 간의 결합까지 확장해 해석할 만한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인간다운 생활 보장을 위한 사회보장 영역에서 민법보다 사실혼 범위를 넓게 해석해야 한다는 소씨 주장도 배척했다. 재판부는 "사회보장 영역에서도 기존 혼인법 질서에 반하는 내용의 사실혼은 원칙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고 봤다.
이어 "국민건강보험의 보호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가입자로서 최소한의 보험료 납부의무를 지게 되는 사정만으로는 혼인법 질서의 유지라는 공익적 요청을 배제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헌법상 평등원칙에 반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부과처분은 피고(공단)의 재량에 달린 문제가 아니어서 행정의 재량준칙으로서 평등의 원칙과 무관하다"며 "동성 간 결합과 남녀 간의 결합이 본질적으로 같다고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이를 달리 취급하는 것이 헌법상 평등원칙에 반한다고 하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입법 없어 혼인 의미 확대 못해"
해외에서 동성혼을 인정하는 사례가 있지만 한국은 관련 입법이 없어 동성 간 결합을 혼인으로 해석할 수 없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호주나 유럽연합의 여러 나라가 동성혼을 인정하고 있고, 또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가 동성 동반자 제도를 두는 등 세계적으로는 혼인할 권리를 이성 간으로 제한하지 않고 개인의 자유로 인정한다"면서도 "혼인제도란 각 사회 내 사회 문화적 함의의 결정체이므로, 그 인정 여부는 개별 국가 내 사회적 수요와 합의에 따라 결정될 일로서 원칙적으로 입법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우리나라 안에서 구체적인 입법이 없는 상태에서 개별 법령의 해석만으로 곧바로 혼인의 의미를 동성 간 결합으로까지 확대할 수는 없다"고 했다.
소씨 부부는 항소 방침을 밝혔다. 소씨 부부 대리인 김지림 변호사는 "법원의 판결은 동성 부부를 민법상의 사실혼 배우자로 포함할 것인가로 한정해 해석한 한계가 뚜렷하다"며 "민법상 사실혼 배우자가 아니라 이미 예외를 인정해온 예들이 존재해서 훨씬 넓게 해석할 수 있고 당사자들은 거기 해당한다고 주장했는데 인정을 안해줘서 아쉽다"고 말했다.
소씨는 "재판부는 입법부가 먼저 나서야 한다는 식으로 말한 것 같다"며 "그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다만 "저희 부부에겐 선택지가 없다"며 "권리가 똑같이 주어지지 않아서 항소해야하고 싸울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김씨는 "재판 과정에서 저희는 끝없이 저희의 관계를 증명해야 했다"며 "이성 간에는 정말 생면부지의 남이라도 그날 그냥 손 잡고 구청에 가서 결혼 신고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변론기일 동안 피고 측에서 끝없이 저희 관계를 부정했다"며 "왜 저희는 저희의 관계를 그렇게 애써 증명해야 하는걸까. 저희 관계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는 것은 모욕적"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씨는 눈물 흘리며 "제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 저희가 남남으로 불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저희는 동반자로 남고싶다"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피부양자 지위 박탈을 취소하라며 소성욱씨가 낸 소송에서 패소한 7일 소씨의 남편 김용민씨가 발언 도중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