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돈 겟 샷

입력 : 2022-01-13 오전 6:00:00
유럽은 코로나19로 인해 말 그대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홍역을 치르다’라는 말은, 감염병의 무서움이 우리 말에  관용구로 남은 것이다. 홍역 백신이 일상화되기 전까지, 엄청난 전염력을 지닌 홍역으로 한 때 유아사망률이 40%에 이르던 시절도 있었다. 홍역은 백신으로 인해 조절이 가능한 전염병이 되었지만, 여전히 전 세계에서 매 해 수천만명을 감염시키고, 수 십만명이 목숨을 잃는 질병이다. 한국은 다행히 홍역백신 접종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하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주변에서 홍역으로 죽는 아이를 보지 않아도 된다. 2016년 세계보건기구는 아메리카 대륙이 세계 최초로 홍역 소멸 지역이 됐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2019년 백신거부자들의 확산으로, 미국은 다시 홍역 비상사태를 선포해야만 했다. 자신의 아이를 위해 백신을 거부하는 백신거부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아이들의 생명을 위험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유럽은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백신거부운동으로 홍역을 치르는 중이다. 이달 15일 방역패스 도입을 앞둔 유럽의 각 국에서는 분노한 시민들이 시위에 나섰다. 프랑스에서는 방역패스 도입을 반대하는 10만명의 군중시위가 열렸고, 백신 방역패스 도입에 찬성한 일부 의원들은 살해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보건부 장관 집주소가 온라인에 공개되었고, 괴한이 집에 찾아오는 사건이 발생했다. 독일은 더욱 심각하다. 연일 시위가 벌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작센주지사 살해계획을 세우던 백신 반대론자들이 발각되었다. 크레쉬머 주지사는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대한 태도가 급변한 인물로, 지난해 가을까지는 정부의 방역 조치를 히스테리라고 비꼰 인물이었다. 하지만 작센주의 확진자가 급증하자 크리스마스에 시장을 폐쇄하는 등의 방역 강화를 주도했다가, 백신 반대론자들의 살해모의 표적이 됐다. 
 
유럽의 백신갈등은 어린이 접종을 두고 격화되기 시작했다. 적극적인 백신반대론자가 아닌 부모들조차, 갑자기 어린이 접종을 강행하는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특히 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하던 서유럽의 시민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정책을 강제하는 정부가 못마땅하다. 백신접종이 주로 언론의 방해로 지연된 한국에서조차, 청소년 백신패스를 두고 학부모들의 불만이 심각해졌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백신 접종증명서를 위조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고, 정부는 벌금을 강화하고 있지만 이런 강제적인 정책이 더더욱 불만을 가증시키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를 생산하는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백신 반대운동은 헛소리라고 일축했지만, 확진자 20만명이 나오는 상황 속에서도 백신 접종률을 강제적으로 늘릴 방안을 전혀 강구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는 유럽의 민주주의를 시험대에 올려놨다.
 
이 와중에 백신에 반대하던 프랑스 극우정당 소속 조제 에브라 의원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 그는 백신반대론자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인물이다. 사람의 죽음을 희화화하는 건 끔찍한 일이지만, 백신 접종 의무화를 반대하던 정치인들이 코로나19로 사망하는 상황은 진정한 희비극을 연출한다. 미국 공화당 소속의 더그 에릭슨 워싱턴주 상원의원 또한 백신의무화 지침을 강력하게 반대했고, 워싱턴 주지사의 코로나19 긴급 명령을 비판하던 정치인으로, 코로나19에 감염된 후 지난 달 숨을 거뒀다. 코로나19가 사탄의 공격이라는 주장으로 백신 반대를 외치던 미국 기독교 방송 설립자 마커스 램도 코로나19에 감염된 후 죽었고, 백신 의무화를 반대하던 미국의 40대 검사 켈리 언비도 코로나19로 사망했다. 이보다 더한 희비극은 유럽의 극우와 극좌 세력이 백신 반대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극우파는 백신 의무화가 정부의 시민 통제라는 논리로, 극좌파는 정부가 다국적 제약사 등의 거대 자본과 결탁해 시민을 상대로 기업의 이익만 불려주고 있다는 논리로 백신을 반대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서구 사회는 물론 세계에 잠들어 있던 여러 사회적 모순들을 모두 표면화하고 있다.
 
‘돈 룩 업 Don’t look up’은 지구로 다가오는 혜성을 발견한 두 과학자가 이를 정치권과 언론에 공개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희비극이다. 이 드라마에서 두 과학자의 경고는 상업화된 언론에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고, 심지어 대통령조차 이들의 경고를 무시해버린다. 겨우 혜성의 위험이 대중에 알려지게 됐지만, 그건 이 위협을 유명세로 사용하려던 가수 덕분이었고, 언론과 정치인들은 혜성이 지구로 다가와 지구를 박살내기 직전까지도, 이 사태를 자신의 이익으로 환원하는데에만 몰두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가 기후위기에 대한 과학자들의 경고를 무시하는 언론과 정치를 비꼬는 영화라고 말한다. 감독 애덤 맥케이도 이 영화의 기획 의도를 그렇게 표현했다. 하지만 당장 우리에게 닥친 과학과 관련된 정치적 사안은, 기후위기가 아니라 백신이다. 백신 문제를 둘러싸고 현재 지구상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야기야말로, ‘돈 룩 업’의 세계관을 빼다 박았기 때문이다.
 
‘돈 겟 샷 Don’t get shot’을 외치는 백신 반대론자들은 서구의 자유민주주의적 가치관을 수호한다는 숭고함으로 시위에 나서고 있다. 국가 권력은 백신의 접종을 개인에게 강요해선 안된다는게 이들의 철학이다. 정부는 백신과 감염병의 문제를 막기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가 어느 정도 희생될 수 밖에 없다는걸 잘 알고 있다. 또한 감염병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내 이웃, 나아가 공동체 모두가 걸린 사회의 문제다. 코로나19는 서구 민주주의가 지난 세월 개인과 사회의 이익 사이에서 너무나 단순하게 취급해온 공동체의 문제를 끄집어 냈다. 나의 행복이 타인의 행복이 될 때는 잘 협력하던 서구의 시민들이, 나의 인내가 타인의 생존이 되는 문제에서는 분노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구의 정치인들은, 개인의 자율성을 체화한 시민들을 설득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척할 과제를 안게 되었다. 지금과 같은 강제적인 방역정책으로, 서구의 시민들을 설득시키는건 불가능할 것이다.
 
영화 ‘돈 룩 업’은 혜성이 다가오는 하늘을 제발 쳐다보라는 과학자들의 경고를 무시하는 정치에 대한 경고다. 영화가 현실에 대한 비판과 풍자의 예술이라면, 이 영화야말로 코로나19 사태에서 우리에게 과학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중요한 작품일지 모른다. 백신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생물학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과학은 우리에게 끊임 없이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정치는 과학의 이 메시지를 시민들의 가슴 속에 심을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과학은 백신을 개발하며 제 역할을 다 하고 있지만, 정치는 그렇지 못했다. 정치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돈 룩 업’처럼 세상은 멸망할 것이다. ‘돈 룩 업’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과학자 랜달 민디는, 논문을 많이 발표했거나 해당 분야에서 유명한 교수도 아니었지만, 혜성충돌의 위기를 대중에게 경고하면서 한 명의 운동가로 성장해나간다. 그는 혜성 충돌을 막지 못하고, 자신의 집에서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최후를 맞이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그렇게 비극이 되어서는 안된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과학이 그 역할의 일부를 대체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보여준 정치의 비과학성은, 이제 우리가 왜 정치를 과학적으로 변화시켜야 하는지를 보여준, 중요한 교훈이었는지 모른다. 정치는 좀 더 과학적으로 혁신되어야 한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heterosis.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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