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지난해 코로나19 장기화로 모든 국민이 시름하는 사이에 많은 희소식을 받아들었다. 국제연합무역개발기구(UNCTAD)에서 선진국그룹으로 소속이 바뀌어 선진국임을 국제사회에서 공식 인정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G7회의에 공식초청받아 참석하는 등 나름대로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다. 수출실적은 사상최고를 달성하면서 세계 8위에 도달했다. 오징어게임과 방탄소년단 등 한류의 강력한 바람은 전세계를 휩쓸었다.
그렇지만 한국이 진정 선진국으로 평가될 만한 자격이 있는지 아직도 되묻게 된다. 특히 후진국형 대형사고가 아직도 자주 일어나고 있다. 어쩌다 한번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잊을 만 하면 일어난다. 그것도 중소기업이 아니라 굴지의 대기업의 현장에서 일어난다. 그러니 한국이 선진국이라고 말하기가 낯뜨거울 수밖에 없다.
최근 광주에서 일어난 고층아파트 붕괴사고는 한국이 아직 선진국 되기에는 멀었다는 인식을 더욱 뒷받침한다. 오히려 후퇴했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이번 사고는 시공능력 9위를 자랑하는 현대산업개발의 현장에서 일어났다. 지난해 6월 광주 학동 참사에 이어 같은 같은 대기업 공사장에서 대형 사고가 또 터진 것이다.
학동 사고가 일어나자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현장을 찾아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고개를 숙였다. 사고방지 대책까지 내놨지만 모두 공염불로 끝났다.
지난 11일 신축중인 고층 주상복합아파트의 외벽이 붕괴하는 사고로 말미암아 작업자 1명이 다치고 6명은 실종됐다가 1명만 찾아냈다. 아직 입주가 안되고 신축공사 중에 일어났기에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것을 두고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번 붕괴사고의 경우 콘크리트 양생기간이 불충분했다는 등의 여러 정황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사건의 경위와 원인은 앞으로 더 조사하고 수사해봐야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바로는 두 사고에는 모두 고질적인 안전불감증과 지나친 ‘빨리빨리’ 악습에서 비롯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고를 일으킨 현대산업개발은 1976년 설립된 한국도시개발을 모태로 설립된 현대그룹의 계열사였다. 서울 압구정 현대아파트 건설로 1군 건설사로 도약했다. 1999년 3월 정주영 명예회장의 동생인 정세영 명예회장과 그의 장남 정몽규 회장이 자리를 옮기면서 분가해 오늘에 이르렀다.
요컨대 창업자가 생존해 있던 시기에는 별다른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는데, 오히려 창업 2세대에 와서 끔찍한 사고를 냈다. 국가가 선진화되면 기업가정신도 발전해야 하는데, 거꾸로 흘러갔다.
현대산업개발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정부와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엄중한 제재를 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곳곳에서 시공사에서 현대산업개발을 배척하려는 움직임도 확산되고 있다. 모두가 자업자득이다.
최근 LG화학을 비롯해 SK그룹과 카카오그룹 등의 여러 계열사들이 물적분할을 거쳐 중복상장하는 것이나 카카오 경영진의 먹튀성 스톡옵션 매각도 사실은 후진국형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스톡옵션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 국가경제가 커지고 혁신을 강조하는 분위기를 틈타 스톡옵션이라는 '외래문물'이 들어왔다. 그러나 애초 취지와 달리 소수가 한몫 챙기는 수단으로 변질된 모습이다. 진정 선진화된 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악습 아닌가?
후진국 같은 모습이 도처에서 드러나는 것은 법규가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진정한 선진화는 법규에 앞서 건실한 의식과 실천이 정착되면서 성취된다. 맹목적으로 법규만 따지는 것은 스스로 선진화될 자질이 부족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핑계일 따름이다.
이제야말로 참된 선진화를 위한 진정한 혁신이 필요하다. 법규 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의 의식과 실천 등 모든 것이 선진화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이비선진국'이라는 구각을 깨치고 나오지 못한다. 그리고 죄없는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만 계속 희생당하게 될 것이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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