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량전이 열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전국에 311만가구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공약했다. 경선 과정에서는 250만가구 공급을 약속했는데, 이보다 61만가구 늘었다.
서울에서는 총 107만가구를 쏟아낸다. 기존 계획 59만가구보다 48만가구 증가한다. 이 후보가 내놓겠다는 공급 중 3분의 1 가량은 서울분이다. 집값 상승의 원인은 공급부족이라는 진단이 있었으니, 물량을 풀어 수급을 맞추겠다는 해결책은 타당하다.
막대한 수치는 현혹적이다. 특히나 수요가 꾸준한 서울은 공급이 더 절실하다. 하지만 정치적인 숫자라는 평가도 나온다. 선거전에서 경쟁상대인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또 문재인 정부와 차별을 두기 위한 공약이라는 것이다. 윤 후보는 250만가구 공급 계획을 밝혔다. 현 정부는 임기 후반에 들어 공공재개발, 사전청약 등 물량 확대에 나서기 시작했다. 규모만 놓고 보면 이 후보가 압도적이다.
공급 현실화에 문제가 없다면, 311만가구는 선거용이 아닌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한 대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후보가 당초 언급했던 250만가구 중에서도 현실 가능한 물량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했다.
서울에 새로 추가된 48만가구 역시 실현 가능한지는 미지수다. 이 후보는 용산공원, 김포공항 인근, 1호선 지하화, 정비사업, 노후 영구임대단지 재건축 등으로 물량을 내놓겠다는 전략을 짰다.
이 중 용산공원, 김포공항 인근, 1호선 지하화 등 일부 부지의 경우에는 사업 추진에 난관이 예상된다. 용산공원은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이 2025년까지 마치더라도, 부지 반환과 토양오염 조사, 토양 정화 등 아파트를 짓기까지 여러 과정이 필요하다. 최소 5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김포공항 인근 부지는 고층 아파트를 짓기 어렵다. 비행안전상 고도제한이 걸려있다. 공항과 가까운 인천 계양, 부천 대장에서도 15층 이상의 아파트를 지을 수 없다. 소음 문제 역시 주택 공급에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부지 확보 외에 구체적 공급 계획은 없는, 후보의 희망사항을 공약으로 공개했다”라고 꼬집었다. 막대한 공급을 약속했지만 실제 시장에서 공급효과를 체감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는 우려다. 이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임기 내 시장에 풀리는 물량은 기대보다 많지 않을 수 있다.
내 집 마련을 위해 주택 공급을 기다리는 서민·무주택자에게는 희망고문이다. 그들로선 ‘공급 기다리지 말고 집을 샀어야 했다’는 후회를 할 지도 모를 일이다. 현 정부 임기 중에서도 ‘규제 기대하지 말고 그냥 집 샀어야 했다’는 무주택자 하소연이 곳곳에서 들렸다.
부동산 정책의 목표는 주거 안정이다. 공약의 초점 역시 같아야 한다. 선거에 이용하는 방식으로 숫자를 높이고 공약을 내건다면, 시장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커진다. 시장에 필요한 건 기대만 높이는 물량전이 아니라, 현실 가능성이 높은 공급이다.
김응열 기자 sealjjan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