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승진 기자] 온라인상 무차별적 '혐오 공격'이 도를 넘고 있다. 견디지 못한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면 주변인을 타깃으로 겨냥하고 '혐오 놀이'에 열을 올린다. '구독·좋아요=돈'이라는 법칙이 최고인 유튜브상에서는 사이버렉카들이 '혐오 놀이판'을 펼치면 이용자들은 맹목적으로 열광한다. 일반인도 공격대상에서 예외가 아니다. 규제의 필요성은 이미 오래 전 제기됐지만, 제도적 해결은 요원하다. <뉴스토마토>는 3부작으로 이미 범람하고 있는 사회적 혐오의 밑바닥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한다.(편집자주)
유튜브와 인터넷방송 트위치에서 활동하던 BJ잼미(본명 조장미)가 최근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잼미는 트위치 구독자 16만명, 유튜브 구독자 13만명을 보유한 유명 인터넷 방송인이다. 잼미의 소식을 알린 유족은 잼미가 그동안 악플과 루머 등으로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고 전했다.
악성 댓글은 잼미가 2019년 방송에서 남성 혐오 제스처를 했다는 이유로 시작됐다.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잼미를 향한 성희롱성 댓글도 이어졌다. 잼미는 이후 방송을 통해 두 차례나 사과했지만, 무조건적 비난과 조리돌림은 멈추지 않았다.
"악플 멈춰달라" 호소에 조롱·인신공격
다음 해인 2020년 5월, 잼미는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그의 어머니는 잼미를 향한 악플에 충격을 받아 우울증 치료를 받던 중이었다. 당시 잼미는 “엄마가 나 때문에 죽은 것 같다. 내가 방송을 안 했다면 엄마가 마음고생 안 했겠지”라며 울며 자책했다. 그러면서 악플을 멈춰달라고 호소했지만 악플러들은 온갖 조롱과 각종 인신공격으로 답했다. 일부 유튜버들은 아예 이 영상을 콘텐츠로 만들어 웃음거리로 삼았다.
최근 세상을 떠난 BJ잼미. 사진/뉴시스
"어머니 따라가지 않고 뭐하냐"
잼미의 우울증 원인은 ‘악플과 루머’라는 짧은 단어로 표현됐지만, 그 속에 들어찬 말들은 흉기와 같았다. 고개를 조아리고 사과를 해도, 울며 심경을 호소해도, 그 모든 것이 오히려 악플러들의 먹잇감이었다. 잼미를 향한 악플에는 ‘어머니를 따라가지 않고 뭐하냐’며 그의 자살을 종용하는 소리도 있었다. 잼미는 결국 2022년, 27세의 짧은 삶을 마감했다.
한번 악플러들에게 찍힌 유명인은 살아서는 빠져나오기가 어려웠다. 지난 4일 배구선수 김인혁은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지난해 8월 그는 “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경기마다 수많은 메시지와 악플을 보내는데 진짜 버티기 힘들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그를 향한 비난은 ‘왜 화장을 하고 다니냐?’, ‘남자 좋아하게 생겼다’ 등 외모를 겨냥한 혐오 발언이었다. 그는 조목조목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악플러들은 끊임없이 그를 모욕하는 말을 쏟아냈다.
'김인혁 추모' 홍석천도 겨냥해 인신공격
그가 생을 달리한 이후에도 악플러들은 표적을 달리할 뿐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방송인 홍석천이 고 김인혁 선수를 애도하는 글에도 ‘고인을 욕보였다’, ‘고인을 강제 아웃팅했다’는 등의 비난 발언을 해댔다. 홍석천은 “온갖 악플과 스트레스를 견뎌야 했던 인혁이의 아픔을 얘기한 건데. 이제 나를 공격하네”라며 “악플러들 너희는 살인자”라며 분노를 표했다.
악플로 인한 극단적 선택 사건은 이전부터 발생해 왔다. 지난 2019년에는 가수 설리와 구하라가 한달 간격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2020년에는 유튜버 BJ(본명 박소은), 배구선수 고유민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들의 유족은 모두 악플로 인한 우울증이 있었다고 밝혔다.
일반인도 악플로 인한 고통을 호소한다. 2020년 10월에는 평소 우울증을 앓던 대학생이 자신의 고민을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에 올렸는데, 악플러들은 오히려 이를 조롱했다. 그는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다.
"정말 댓글로도 죽을 수 있겠구나"
일부 유명인들은 악플에 시달리는 사실을 공개하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 ‘스트릿댄스 걸스 파이터’에 출연하는 댄서 안지민은 “체형, 얼굴에 대한 비하가 심하다. 정말 댓글로 사람이 죽을 수 있구나 싶었다”며 악플로 인한 고통받고 있음을 알렸다. 배우 김민재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악플러가 보낸 메시지를 공개하며 삼가 달라고 요청했다.
악플로 인한 피해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 현재 악플러들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명예훼손’이 유일하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 발생 건수는 2015년 4337건에서 2020년 9140건으로 5년 사이 두 배가 됐다. 해당 혐의로 검거된 인원도 2015년 6430명에서 2020년 1만 3738명으로 2.13배 증가했다.
유현재 서강대 미디어학과 교수는 "연예인 등 일부 악플을 방지하기 위해 댓글을 막아놓는 포털사이트가 등장했지만, 악플러들의 입장에서 보면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 많다"며 "관련 법을 강화해 악플러들에게 강력한 처벌을 가해야 하는데 국회에서 지지부진해 이 같은 피해가 계속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뉴시스
조승진 기자 chogiz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