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가 3일 전격적 야권 단일화에 비상이 걸렸다. 그간 여론조사를 보면 이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오차범위 내 접전이지만, 야권 단일화 땐 윤 후보가 이기는 걸로 나타났다. 대선을 6일 앞두고 판세가 요동칠 가능성이 다분하다. 민주당은 야권 단일화를 정치 야합으로 치부하고,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에 성사됐다는 점을 근거로 비관론을 수습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야권 단일화 충격파…이재명 "꿋꿋하게 가겠다"
이재명 후보는 이날 오전 서울시 중구에서 정순택 베드로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을 예방한 뒤 기자들과 만나 '윤 후보와 안 후보의 단일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정치는 정치인들이 하는 것 같지만 국민이 하는 것"이라며 "역사와 국민을 믿는다. 민생경제와 평화, 통합의 길로 꿋꿋하게 걸어가겠다"라고 밝혔다. 단일화로 대선 판세가 일대 전환을 맞겠지만, 일희일비하지 않고 제 길을 가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3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서울시 종로구 보신각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야권 단일화에 대해 이 후보가 '꿋꿋하게 걸어가겠다'는 입장을 낸 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민주당의 표정을 오히려 잘 드러낸다. 실제 이날 오전 8시 윤 후보와 안 후보가 국회 소통관에서 단일화에 합의하는 기자회견을 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민주당은 즉각 긴급 선거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대응책을 논의했다. 전날만 해도 야권 단일화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없다"라고 일축했던 민주당으로선 크게 한방 얻어맞은 셈.
단일화 기자회견 후 1시간 지나서 우상호 민주당 총괄선대본부장은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윤석열·안철수 단일화를 '야합'으로 규정했다. 이어 24시간 비상체제에 돌입한다고 선언했다. 우 본부장은 "당원과 지지자들이 총력 대응할 것"이라며 "우리에겐 아직 6일의 시간이 남았고, 대한민국 국민은 현명하다"고 말했다. 송영길 대표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진정성도 공감도 없는 정치거래에 국민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이번 선거는 김대중답게, 노무현답게, 문재인처럼, 이재명처럼 이기자. 특권과 반칙 세력의 야합을 분쇄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해 전진하자. 결집하고 투표해야 이긴다"라고 호소했다.
민주당, 단일화 파장 '불끄기'…"불리한 건 아니야"
다만 민주당은 단일화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되 이 후보가 전혀 불리해진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후보 측 한 핵심 관계자는 "이날부터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기 때문에 야권 단일화가 민심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판세는 아무도 알 수없다"며 "남은 기간 당원과 지지층이 정말 열심히 하면 유리하게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는 단일화가 역풍을 맞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야합이라 할 만큼 밀고당기기 또는 폭로전식 단일화였는데, 가뜩이나 구태정치를 혐오하는 중도층의 반감과 피로감이 더 커졌다"면서 "단일화에 위기감을 느낀 지지층의 결집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2002년 대선 땐 정몽준 후보가 투표 전날 단일화를 전격 철회했으나 지지층이 집결하고 중도층 표심이 기울며 노무현 후보가 극적으로 당선됐다.
3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서울시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앞 광장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이 후보 지지를 선언한 김동연 새로운물결 후보와 손을 잡고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근 여론조사의 지지율을 보면 안 후보의 표심 일부가 단일화 때 모두 윤 후보를 지지한고 볼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머니투데이 더300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 1~2일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4자 대결 지지율은 윤 후보 40.6%, 이 후보 39.2%, 안 후보 9.0%, 심 후보 2.1% 순이었다. 그런데 '이 후보와 윤 후보, 심 후보가 출마할 경우 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느냐'는 3자 대결 질문엔 윤 후보가 42.5%로, 이 후보(42.2%)를 0.3%포인트 근소하게 앞섰다. 윤 후보와 안 후보의 단일화에 따른 윤 후보의 지지율(42.5%)이 4자 대결 때 두 사람의 지지율 단순 합계(40.6%+9.0%=49.6%)보다 적은 것. 윤 후보와 이 후보의 지지율 격차도 3자 대결 때의 차이(0.3%포인트)가 4자 대결 격차(1.4%포인트)보다 더 적다.
안 후보 지지자가 3자 대결 때 윤 후보 쪽보다 이 후보에게로 더 많이 이동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야권 단일화에 따른 윤 후보의 '필승카드' 효과가 크지 않다는 말이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실제 이날 선대위 정무실장을 맡은 윤건영 의원도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깜깜이 판세가 됐는데 단일화로 인한 판세분석은 누구도 할 수 없고, 각자의 주장만 있을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불안은 더 심해질 것"이라면서 "어느 쪽이 더 유리하다라고 판단하긴 아직 이르고 단일화가 국민적 동의를 받느냐 국민적 인정을 받을 거냐라는, 즉 민심이 어떻게 반응할 것이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라고 주장했다.
'단일화 가능성 없다'더니…전략 실패 비판 불가피
민주당으로선 야권 단일화를 전혀 예상하지도, 대비하지도 못한 전략 실패에 대한 비판이 불가피하다. 전날만 해도 "야권 단일화는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한 안일한 모습을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전날 밤 3차 법정 TV토론에서도 이 후보는 안 후보에게 각별히 우호인 자세였다. 이 후보는 안 후보의 균형발전 정책과 관한 질문에 "매우 훌륭한 지적", "분권의 문제, 지방 균형발전의 문제까지 관심 가진 걸 보고 놀랐다는 말씀을 드린다"는 등의 표현으로 '러브콜'을 보낸 바 있다. '러브콜'은 채 12시간도 안 돼 '야합 규탄'으로 바뀌었다.
이날 오전에도 선대위 한 관계자는 윤 후보와 안 후보의 단일화 기자회견에 관한 대응을 묻는 질문에 "아. 그래요? 전혀 뜻밖의 일이네요. 뉴스부터 확인해보겠다"고 했을 정도. 윤건영 의원도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단일화는)당연히 예상을 못했다"며 "힘들지 않겠나 했는데 단일화가 됐다"라며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