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김동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5월10일)이 5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87년 직선제 개헌 후 국회의원 경력이 없는 첫 '0선 대통령'의 탄생이다. 정치신인인 그의 앞에 놓인 한계는 녹록치 않다. 당장 여소야대의 의회 구도에 직면해야 한다. 또 역대 최소 격차(0.73%포인트)로 신승한 만큼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절반가량의 국민들을 껴안아야 한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에게 제기된 '검찰공화국' 우려도 불식시켜야 한다. 하나라도 삐긋할 경우 정부 출범 직후부터 험로를 걸을 수도 있다.
이에 <뉴스토마토>는 역대 국회의장과 부의장 등 정치원로 6명에게 새정부에 바라는 고언을 구했다. 이들은 "상대 존중을 바탕으로 한 소통과 협치, 이를 통해 국민통합의 길로 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인터뷰에 응한 국회의장단은 문희상·정의화 전 의장, 심재철·이석현·이주영·정갑윤·주승용 전 부의장 등이다.(가나다 순) 여소야대 구도로 짜여진 국회와의 관계, 권력구조 개편 등 개헌에 대한 대통령의 역할과 자세, 국론분열을 수습하고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한 제언, 윤 당선인에게 거는 기대 등을 물었다.
10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 앞에 마련된 무대에서 20대 대통령 당선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희상 전 의장(20대 후반기 국회의장)은 먼저 국회와의 관계에 대해 "첫째도 협치, 둘째도 협치, 셋째도 협치"라고 강조했다. 문 전 의장은 "0선 대통령이라는 말은 정치에 경험이 없다는 뜻이지만, 오히려 그런 이유로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말이기 때문에 정치개혁을 달성할 절호의 기회"라고 기대를 품었다.
그는 '성공한 협치'로 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사례를 들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은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협치를 동원했는데, 여당인 민주정의당에선 김윤환 원내총무(현 원내대표)가 3김을 대리하는 원내총무 김원기(평화민주당)·최형우(통일민주당)·김용채(공화당) 등과 함께 이른바 4인 협의체를 만들어서 국회 현안을 결정했다"며 "노 전 대통령은 '당신들 마음대로 하세요'라며 국회 자유를 최대한 인정했고 협치가 제대로 굴러가면서 외교안보적으로 남북 기본합의서 탄생, 남북 유엔 동시가입, 북방외교 등 획기적 일들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문 전 의장은 아울러 "당시 일각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권력행사를 아끼니까 '물태우'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지금의 역사는 업적만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을 역임한 문희상 전 국회의장. (사진=뉴시스)
문 전 의장은 또 "김 전 대통령은 'DJP 연합'으로 당선된 것도 있으나 김종필·박태준·이한동 등 타당 사람들을 총리고 기용하고 책임총리의 권한을 부여했다"며 "보수 진영의 강인덕씨를 통일부 장관으로 임명하는 등 지역과 이념을 가리지 않는 탕평 인사로 외환위기(IMF) 극복과 정부 혁신의 발판을 만들었다"라고 평가했다.
정의화 전 의장(19대 후반기 국회의장)도 국회와의 관계에 대해 "링컨식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구체적으로는 "국회의장, 야당 당대표·원내대표 등 지도부와 격식을 따지지 말고 자주 소통하길 바란다"며 "독일식 대연정도 구상하고, 정부의 법안이 필요한 경우 꼭 반대쪽 의원들과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적임자가 있다면 야당에서도 인재를 발탁을 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윤 당선인은 0선인데, 뒤집어 보면 여의도 정치에 부채가 없다는 뜻이므로 이를 잘 활용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심재철 전 부의장(20대 전반기 부의장), 이주영 전 부의장(20대 후반기 부의장), 주승용 전 부의장(20대 후반기 부의장) 등도 윤 당선인에게 협치를 거듭 요청했다. 이석현 전 부의장(19대 후반기 부의장)은 윤 당선인의 자세로 '경청'을, 정갑윤 전 부의장(19대 후반기 부의장)은 국민과 국회를 설득하는 '인내력'을 꼽았다.
19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을 역임한 정의화 전 국회의장. (사진=뉴시스)
개헌도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역대 의장단은 개헌에 열린 자세를 당부했다. 정 전 의장은 "윤 당선인은 개헌에 관해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며 "원로 정치인들과 사회 원로들을 만나 의견을 청취하고 헌법학자들과 논의해 왜 권력구조 개헌이 필요한지 고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헌엔 여러 방법이 있으나 제 정치경험으로 보면 분권형 또는 이원집정제 같은 준내각제로 권력구조를 바꾸는 게 타당하다"고 했다. 주 전 부의장도 "선거에서 이긴 쪽이 모든 걸 갖는 대통령제는 이제 그만 하자"며 "개헌을 해서 분권형 대통령제로라도 가야 한다"고 했다. 이어 "여소야대 정국에선 국회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개헌이든 뭐든 쉽지 않다"면서 "야당한테 줄 수 있는 건 주고 협치를 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대 대선에서 윤 당선인은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을 단 0.73%포인트, 24만7077표 차이로 이겼다. 역대 대선 최소 표차의 신승이었다. 윤 당선인은 높은 정권교체 열기를 기반으로 보수층을 공고히 하는 한편 이준석 대표의 조언을 받아들여 세대포위론을 꺼내들었다. 이를 위해 이대남(20대 남성)을 집중 공략했다. 이는 극심한 젠더 갈등을 낳았다. 기존 지역에 세대, 성별까지 갈라지면서 대선은 분열의 장이 됐다. 당연히 윤 당선인으로선 국민통합이 절대적 과제로 떠오를 수밖에 없게 됐다.
이에 대해 문 전 의장은 "결국 다시 협치의 문제로 돌아간다"며 "협치를 통해 국회, 상대 진영을 존중하는 모습으로 민심을 통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전 의장은 "지역 균형발전을 통한 지역 화합, 군 입대 남성에 대한 충분한 보상책을 연구하고 여성의 경제활동을 장려해 젠더 갈등을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심상정 정의당 후보를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삼는 것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구체적 대안까지 제시했다.
정갑윤 전 부의장은 "나에게 투표를 했든 안 했든 다 포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며 "(문재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회동이 무산됐는데)정권을 찾았다고 해서 요란스럽게 당장 '뭐를 해라'라고 하는 건 바람직스럽지 않고, 잘한 뒤에 국민의 판단을 구해야 한다"고 했다. 이석현 전 부의장은 "진영을 떠나서 인재를 등용하고 덕망이 있는 사람을 써야 한다"며 "무슨 일을 하든 국민 상식에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을 역임한 주승용 전 국회부의장. (사진=뉴시스)
역대 의장단은 윤 당선인에게 마지막 조언으로 '초심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문 전 의장은 "대통령 당선 때의 초심을 잃지 말고 선거에서 공약한 대로만 하면 된다"고 했으며, 정 전 의장은 "권력에 도취되지 말고, 국민이 이 시대에 왜 비정치인인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았는지 항상 뒤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주영 전 부의장은 "새 대통령에게 기대가 많은 만큼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석현 전 부의장은 "대통령은 큰 줄거리를 잡아나가는 사람이지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전문가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고 국민과 함께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병호·김동현 기자 choib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