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승진 기자] 해군이 성추행 피해자를 집단으로 괴롭히고 역고소까지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해 공군 이예람 중사의 사망 사건 이후 군이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여전히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가 지속되고 있다.
군인권센터는 29일 서울 마포구 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군 산하의 한 기관에서 성추행을 당한 여성 군무원 A씨를 구성원들이 조직적으로 괴롭히고, 오히려 피해자를 고소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센터는 “해당 기관의 소속 군인들이 성추행 피해자를 배신자로 낙인찍고 업무에서 배제하는 등 집단으로 괴롭혔다”며 “이후 피해자를 오히려 강제추행으로 고소하고 이 사실을 부대에 퍼트려 피해자가 고립되게 만드는 등의 행위를 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2019년 10월 기관장과 현역 군인 등 근무자 약 14명이 참석한 회식에서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 술에 취한 기관장이 2명의 여성 군무원 손등에 입술을 가져다 대려 하는 등의 추행을 저질렀는데, A씨가 그 중 한명이었다. 해당 사건은 많은 이들에 의해 목격됐고 이후 익명의 신고로 기관장은 그해 11월 말 보직 해임됐다. A씨가 아닌 당시 사건의 피해자도 해군을 그만뒀다.
센터에 따르면 A씨는 해당 사건을 신고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A씨는 당시 양성평등담당관을 겸임하고 있어 본인의 피해는 물론 또 다른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진술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양성평등 담당관은 기관 내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사실을 인지할 경우 피해자의 동의하에 상부에 보고해야 한다. 센터는 “A씨가 그때부터 ‘조직의 배신자’로 낙인 찍혀 따돌림에 시달렸다”고 설명했다.
A씨는 성추행 사건 이후 업무 관련 상황을 공유받지 못하고, 영관급 이상의 교육을 맡던 것에서 부사관급 등 낮은 계급을 교육하는 담당으로 밀려났다. A씨는 해군에 대한 애정으로 이를 감내했지만, 새로운 기관장이 오면서 집단 괴롭힘은 더 심해졌다. 해당 기관장은 A씨에게 뒷조사를 했다는 식의 발언을 하고, 특별부대진단이라는 일종의 감찰을 요청하며 A씨가 근무 태만과 갑질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감찰에서 A씨는 무혐의로 결론 났다.
하지만 기관장의 묵인 아래 조직원들의 노골적 괴롭힘은 심해졌고 A씨에 대한 고소와 신고까지 발생했다. 2021년 6월 이 기관의 B소령은 ‘원하지 않는 악수를 강요했다’며 A씨를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했다. 또 C중위는 “A씨가 출장 당시 같은 숙소를 쓰자”고 했다며 신고했다.
A씨는 “악수는 상급자가 교육 뒤 먼저 요청한 것으로 돌아가면서 한 게 전부이고, 평소 어려워한 소령의 팔을 공개적인 장소에서 만지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C중위에 대해서는 “출장 인솔자로서 편의를 위해 숙소를 예약해주고 차량을 제공한 것뿐”이라며 “여러 번 감사 인사를 받은 기록이 있다”고 했다.
현재 B소령은 고소 관련 증거들을 제시하지 않은 채 1년 휴직을 신청하고 중국으로 떠났다. C중위는 전역한 상태다. A씨는 B소령과 C중위를 무고와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센터는 "B소령과 C중위는 조사에 협조하고 있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센터는 “A씨가 성추행을 당한 이후 2년 가까이 조직의 괴롭힘을 감내해왔지만, 새로운 기관장의 부임 이후 버티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했다”며 “이에 수개월 고민 끝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알리게 됐다”고 밝혔다.
센터는 "이번 사건은 성추행 피해자가 보호받지 못하면 어떤 상황이 발생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며 “A씨의 사례를 보고 어떤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를 용기 내 신고할 수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해군은 A씨에 대한 2차 가해와 조직적 괴롭힘, 명예훼손 등을 즉시 조사해 관련자를 전원 엄중 처벌하고, A씨가 본연의 업무를 할 수 있도록 보호조치를 다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숙경 군인권센터 부설 군 성폭력상담소장이 29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성추행 피해자를 조직적으로 괴롭히다 역고소까지 한 해군 사건 관련 내용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조승진 기자 chogiz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