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용산 시대다. 분명 얼마 전까지 광화문 시대가 열릴 분위기였는데, 공약을 내걸었던 당선인은 당선 열흘째날 용산 집무실 이전을 발표했다. 취임 첫 날부터 용산 청사에서 집무를 시작한다니 용산 시대는 눈 앞으로 다가왔다.
용산 시대의 핵심은 최초의 국가공원으로 조성될 용산공원이다. 당선인도 용산 집무실 이전을 발표하면서 6월 이전에 용산공원을 조성해 국민들과 소통하겠다고 약속했다. 용산 청사 이전은 국방부 건물의 높은 활용도도 큰 이유지만, 개방감있는 용산공원의 가치도 적지 않게 차지한다.
하지만, 당선인이 약속한 용산공원의 6월 조기 조성은 수정이 불가피하다. 용산공원은 현재 주한미군이 사용하는 미군기지를 반환받은 후 공원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미군의 부지 반환이 늦어지면서 아직 전체 부지의 10%밖에 받지 못한 상태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미군기지의 환경오염은 심각한 수준이다. 때문에 땅을 돌려받는다고 바로 공사 몇 달해서 공원을 만들 수 없다. 구체적인 조사도 해야 하고, 수년간의 정화작업도 필수적이다. 원인자 부담 원칙에 따라 정화비용을 미군에 청구하려면 지지부진한 협상도 예상된다.
그나마 당선인의 구상을 실현하려면 국방부 인근 반환부지를 공원 조성 전에 조기 개방해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장교 숙소 5단지와 같이 이미 반환받은 부지를 개방하거나 올 상반기 중 반환받을 부지를 개방하면 되기 때문에 불가능의 영역이 아니다. 단, 이를 용산공원이라 부르기엔 무리가 있으며, 이들 부지의 오염 정화작업도 마찬가지로 피할 수 없다.
200만㎡이 넘는 큰 규모인 용산공원은 서울의 마지막 노른자 땅이라 꼽히며, 수많은 위정자들의 밑그림이 이 곳을 지나갔다. 당장 이번 대선에 나섰던 다른 후보 역시 용산공원에 10만호나 되는 청년주택을 짓겠다고 공약했다. 그정도의 주택을 넣으면 현 공원 부지가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그가 당선인이 됐더라도 수정이 불가피했을테다.
용산공원에 아파트를 짓겠다는 구상은 이번 대선에만 국한된 일도 아니다. 노태우 정권 때 주한미군 기지 이전이 처음 나온 당시부터 부동산 공급 부족이 얘기될 때마다 ‘그럼 용산에다가’라며 수시로 그림을 덧칠했다. 만약 그 때 아파트를 지었다면 집값을 정말 잡았을지도 의문이지만, 지금쯤은 재건축을 검토해야 한다.
2000년대 들어 기지 반환이 속도를 내자 서울시청 청사 부지로 용산공원이 검토됐다. 단순한 후보 중 하나가 아니라 인접한 녹사평역이 이를 감안해 대형역사로 지어질 정도였다. 이후 노무현 정부는 용산 미군기지 이전 부지를 100% 공원화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후에도 용산공원으로 저마다의 욕구를 해소하려는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국립과학문화관, 국립경찰박물관, 국립여성사박물관, 호국보훈광장, 국립어린이아트센터, 아리랑무형유산센터 등을 거쳐 비교적 최근엔 국립한국문학관, 경찰청, 이건희미술관까지 모두 용산공원을 탐내다 현재 백지화된 상태다.
이정도면 역사성을 살린 생태공원을 짓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무색할 정도로, 용산공원에 침 바르는 데에는 여당, 야당, 관료가 따로 없다. 별도의 부지 매입비도 들지 않고 인근에 9개나 되는 지하철역이 위치해 강남·강북에서 모두 뛰어난 접근성이라니 용산공원이 만만했나보다.
다만, 100년간 일제와 미군에 가로막혀 출입조차 힘들었던 땅이라면, 누군가의 사유재산을 넘어 공적인 활용을 더 고민해야 한다. 부산의 캠프 하야리아 부지가 부산시민공원으로 탈바꿈한 것처럼, 녹지공간이 부족한 서울에도 자랑할만한 공원이 생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용산공원은 당장 누군가의 업적을 위해 소비할만한 곳이 아니다. 욕망을 덧칠하기엔 지금까지 미군기지의 철조망이 너무 높았다. 시간이 더 걸려도 제대로 정화작업을 거쳐 후세에 부끄럽지 않도록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박용준 공동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