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의준 중소기업정책개발원 규제혁신센터장
가파른 원자재 가격 상승에 하도급 중소기업이 망연자실하고 있다. 상승분은 일부라도 납품가격에 반영돼야 한다. 중소기업의 원자재는 해외 또는 대기업에서 구매하며 주로 건설, 화학, 목재, 철강, 섬유, 플라스틱 분야가 대종을 이룬다. 작금의 원자재 가격은 적게는 10%에서 최고 40~100%수준까지 상승했다. 폴리염화비닐(PVC)은 지난해 60% 가까이, 목재는 불과 2년 만에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원유와 에틸렌 가격은 30%, 니켈은 60%이상 폭등했다.
원자재 가격 인상 자체는 문제 삼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중소기업도 매년 물가인상을 감안해 어느 정도의 원자재가 인상을 감수하고 있다. 문제는 원가상승을 제품가격에 반영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시장제품(B2C)과 달리 하도급의 경우는 거래당사자가 갑을관계를 형성하고 있어 합의에 의한 납품가 인상이 어렵다.
주변의 중소기업 대표들을 만나보면 “속이 터져도 어디 하소연할 곳이 없다”며 한숨을 쉬고 있을 뿐이다. 필자도 제조업을 경영하면서 이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원자재 가격이 단기간에 폭등하면 당장 사재기 현상이 벌어짐으로써 가격 부담은 물론 구입난까지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다. 거래처에 가격인상을 요구하기도 어렵지만 얘기해도 차일피일 미루거나 아예 거래처를 바꿀 수밖에 없다는 으름장(?)에 직면하게 된다. 대기업과의 거래에서 상당수의 억울한 거래는 부실한 서류, 그리고 말로 이뤄진다. 언론에서 보듯 갑의 위치에 있는 곳들 중 사상최대의 흑자를 자랑하는 대기업이 부지기수다.
중소기업계는 10여 년 넘게 이를 해결하고자 노력해왔다. 그 해법의 핵심은 ‘납품단가연동제’의 실시였다. 납품단가연동제는 말 그대로 하도급이나 제품공급 계약기간 중에 원부자재의 가격이 변동되는 경우 이를 반영해 납품단가를 인상해주는 제도다. 2008년 이명박정부가 들어서면서 동반성장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대중소기업의 상생분위기를 강화하며 이 제도를 검토했다. 이익공유제와 같은 강력한 상생방안도 제기돼 세간에서는 “대중소기업 간 기울어진 운동장이 조금 편평해지는 것 아니냐”며 기대를 했다. 그러나 이는 공염불로 끝났다.
원가연동이나 이익공유제가 물거품이 된 것은 △자유로운 기업 간 상거래에 정부가 나서는 게 부적절하다 △중소기업이 원가절감이나 품질개선의 노력을 게을리 하는 등 혁신의지가 약해진다 △오히려 대기업이 해외에 발주하면 중소기업이 피해를 보게 된다는 논리 때문이었다. 대기업의 일방적인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는 대안으로 납품단가조정협의제를 채택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납품단가조정신고센터를 통해 하도급업체가 익명으로 신고할 수 있게 하고, 수급사업자에게 납품단가 조정을 요청할 수 있게 하는 한편 원사업자는 계약서에 조정내용을 명시해 상대에게 교부하도록 했다. 하도급법의 이행도 철저히 감시하겠다고 했다. 제도적으로 뭔가 갖춰진 듯 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책이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중소기업 입장에선 거래중단 우려로 신고하기가 여전히 어렵다. 설사 신고를 한다 해도 관련 절차나 기회비용이 만만치 않고, 대응 준비에 나서기도 쉽지 않다. 익명의 신고라고는 하지만 거래당사자가 어찌 모르겠는가.
그로부터 십수 년이 흘렀다. 중소기업의 40.3%가 원자재 가격의 상승에도 납품가 반영을 기대할 수 없다고 한다. 원자잿값 인상분 반영을 요청하기는커녕 매년 발생하는 10~15%의 원가 후려치기마저 이의제기하기조차 어렵다고 한다. 그나마 희망의 실마리가 됐던 것이 바로 ‘대통령 선거공약’이었다. 여야를 막론하고 당선되면 ‘납품단가연동제’를 실시하겠다고 했다. 당선인도 이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4월19일 “납품단가연동제는 시장경제하에서 정부의 가격 관여의 문제가 있어 곤란하다”며 사실상 공약을 철회했다. 그리고 대안으로 △모범계약서도입 △대행협상제도 완화 △인센티브 제공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는 그간 해왔던 관행을 개선하는 데 그리 실효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중소기업인들은 이미 실행되고 있는 내용에서 조금 개선될지 모르지만 근원적인 문제 해결에는 못 미칠 것이라고 한다. 시장경제를 운운하지만 대기업이 막대한 이익을 보면서도 원가인상을 납품단가에 반영하지 않는 행태가 “정상적인 시장경제나 상도의는 아니다”라고 한다. 막대한 이익을 내부자나 주주에게 주는 것도 좋지만 사업파트너에게도 정당한 대가를 지급해야 하지 않을까. 시장거래 관계에서 한 편이 “공정과 상식에 맞지 않는다”라고 하는데 이를 일부의 의견이라며 간과하는 게 과연 공정과 상식일까. 정부의 방관은 누구를 위한 공정일까?
이의준 중소기업정책개발원 규제혁신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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