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근윤 기자] 윤석열 대통령 취임사에 대해 국민의힘 내에서도 혹평이 나왔다. 윤 대통령이 직접 고쳐 쓴 취임사에 이재오 상임고문은 “논문 같았다”고 말했고, 이준석 대표는 “거의 자유 한사발"이라고 평했다. 취임사는 향후 대통령이 그려갈 국정운영의 철학을 담는 청사진과도 같다는 점에서 이 같은 논란은 윤 대통령에게 분명 부담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를 무려 35차례나 강조한 반면, 대선후보 시절 강조했던 '상식'과 '법치', 극심한 진영갈등을 치유할 '통합'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 같은 논란을 의식한 윤 대통령은 1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어제 제가 취임사에서 '자유', '성장' 이런 얘기하고 '통합' 얘기를 안 했다고 하는 분들이 많더라"며 "우리가 매일 하는 일이 국민통합"이라고도 했다. 앞서 출근길에서도 기자들과 만나 "(통합은)너무 당연한 것"이라며 "나는 통합을 어떤 가치를 지향하면서 할 것이냐, 그걸 이야기 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마친 후 참석자들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사진)
윤 대통령의 해명에도 논란은 이어졌다. 특히 국민의힘 내에서조차 좋지 못한 평가가 잇따랐다. 이준석 대표는 이날 오전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 취임사에 대해 “거의 자유 한사발 하셨다”고 평했다. 또 ‘자유’가 35번이나 등장한 것과 관련해 “자유로 국수를 삶아서 자유로 양념을 얹고 결국 원샷했다”고 뼈 있는 농을 던졌다.
이재오 상임고문도 같은 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솔직하게 얘기하겠다”며 “좀 논문 같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취임사라고 하는 것은 국민들 마음에 와 닿아야 되는데, 거룩한 말만 쭉 연결해 놔서 국민들이 피부에 그렇게 와 닿지 않았느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자유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며 "그 자유의 실천적 과제"가 빠진 점을 지적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 취임사에 대해 '협치가 빠진 채 청사진이 모호했다'는 평가를 내놨다. 박 원내대표는 "전임 대통령들의 취임사와 비교해 보면 청사진이 모호했다"며 "국정운영 목표나 방향 이런 것을 제시해야 하는데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고 꼬집었다. 특히 '반지성주의'란 단어를 지목하며 "반지성주의, 재건 등의 용어가 전임 정권이나 야당을 상대로 하는 것 아니냐고 평가하는 분들도 있다"고 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반지성주의'를 꼽았다. 그는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다"며 "과학과 진실이 전제되어야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라고 강조했다.
반지성주의는 1950년대 매카시즘이 미국 사회를 휩쓸며 미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던 시기에 등장했다. <미국의 반지성주의>의 저자 리처드 호프스태터는 당시 민주주의 대척에 있던 공산진영과 똑같은 논리로 미국의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이들을 비판했다. 결국 '반지성주의'는 대결의 용어로, 타협과 협치를 추구해야 할 현 정치 체제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특히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기존 지역에 더해 세대별, 성별 갈등이 더해지며 진영갈등으로 치달았다는 점에서 반지성주의는 통합을 해하는 개념으로 등장할 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잔디마당에서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치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사진)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너무나 당연해서 뺐다는 건)문재인 전 대통령이 말로만 통합·소통을 했고 실제로는 실현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반감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윤석열 대통령이 하고자 하는 여러 국정운영의 방향을 민주당이 다수의 힘으로 전면적으로 무시한다라는 것을 반지성주의로 표현한 것"이라며 "최근 여러 복잡한 상황을 정면 돌파하겠다라는 의지가 함축된 것으로 본다"고 진단했다.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