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충범 기자] 윤석열 정부가 공약으로 제시했던 '최저임금 차등적용'이 업계 논란만 부추기고 있다. 찬성 측은 근로시장의 고용 탄력성을 높이고 업종별로 차등 적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988년 단 한차례 시행에 불과하고 가장 소득이 낮은 계층에 지급된다는 원 취지도 무색해져 실질적 적용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15일 최저임금위원회에 따르면 윤석렬 정부의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할 최저임금위 2차 전원회의가 오는 17일 열린다. 이날 회의에서는 차등적용을 비롯해 임금 논의의 쟁점인 임금인상폭이 함께 논의된다.
최저임금 차등적용이란 업종이나 지역별로 최저임금을 다르게 책정하는 것을 뜻한다. 최저임금의 차등적용은 근로자와 고용주가 합의 하에 근로 금액을 정할 수 있다는 점이 골자다. 차등적용이 실시되면 그 금액이 최저임금 이하라 해도 고용이 가능해진다.
최저임금의 지역별·업종별 차등적용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반발하는 경영계에서 계속 요구해온 사안이다. 최근 수년간 최저임금의 금액 상단이 높아지면서 전반적인 근로시장의 고용 탄력성이 떨어졌다는 것이 경영계 논리다.
일각에서는 현 최저임금 체계가 고용주 입장에서는 높아진 최저임금과 주휴수당 등으로 인해 고용을 어렵게 하고, 근로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게 만든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지난달 5일 최저임금 심의에서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전무는 "올해 국내 주요 기관에서 경제 회복세가 완만한 기조로 이뤄질 것이라고 하지만 소상공인과 영세 사업주들은 여전히 코로나 팬데믹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지금까지는 법적으로 보장된 업종별 구분적용이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만큼은 전향적으로 업종별 구분적용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음 한다"고 말했다.
최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법에도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 적용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며 "최저임금을 정할 때 업종별 수준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이런 논의를 생산적으로 하기 위해 제대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현행 최저임금법 제4조 1항을 보면 '최저임금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하여 정한다. 이 경우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해 정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는 경영계와 상반된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일단 최저임금 차등적용 근거 자체가 사문화한 제도라는 지적이다.
최저임금 차등적용이 실제 시행된 것은 최저임금제가 도입된 지난 1988년 단 한 차례다. 1989년부터는 단일 최저임금이 적용되고 있고 지역별 차등 적용은 아예 시도된 바 없다.
이정식 고용도농부 장관도 최근 "최저임금 지역별 차등적용은 현행법상 불가하다"며 "개인 생각으로도 지역별 차등적용은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업종별 차등적용과 관련해서는 "최저임금위원회 위원들이 심의해 결정하면 가능하다"면서도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가 진행 중인 상황이라는 이유를 들어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때 최저임금이 많이 올라 부작용이 발생했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평균적으로 보면 이전 정부보다 적게 올렸다고 할 정도로 (문 정부 때) 많이 오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거론했다.
최저임금위의 연도별 최저임금 결정 현황을 보면, 문재인 정권 동안 최저임금은 △2017년 6470원(전년 대비 기준, 7.3%) △2018년 7530원(16.4%) △2019년 8350원(10.9%) △2020년 8590원(2.9%) △2021년 8720원(1.5%)으로 집계됐다. 문 정권 초기 2년간 두 자릿수 인상률을 기록하며 크게 상승했다. 2020년 이후로는 완만히 올랐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같은 논의가 발생한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지난 정부 초기에 최저임금이 크게 올랐는데, 그 정도가 노동생산성이 가장 낮은 업종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결정됐다. 단추가 잘못 채워진 셈"이라며 "최저임금은 가장 임금 층위가 낮은 그룹을 대상으로 노동 생산성, 생활 개선, 소득 재분배 관점에서 가장 낮은 수준으로 정해져야 한다. 하지만 업종 간 임금의 중간값을 최저임금으로 정한다면 최저임금의 전제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 때 최저임금의 차등적용의 실현 가능성은 다소 떨어진다고 생각한다"며 "우리 사회 정서상 업종이든, 사업별로 차등화를 시키게 되면 노동계의 상당한 반발이 예상된다. 아울러 업종별 최저임금을 만든다면 기업들의 반발도 발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저임금 차등적용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소상공인이나 영세상인들의 인건비 증가 등 부담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면서도 "지급능력에 여유가 있는 사업장과 없는 사업장 간에 최저임금이 다르게 형성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또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국토 면적이 넓어 노동 시장 간의 격차가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환경도 아니다"라고 조언했다.
15일 최저임금위원회에 따르면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할 최저임금위 2차 전원회의가 오는 17일 열린다. 사진은 서울 한 공업사에서 작업자가 일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김충범 기자 acech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