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화두 가운데 하나가 ‘물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엔데믹 이후 물가상승 압력 증가, 원자재값 상승 등이 겹치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10년 내 최고인 4.8%로 전망했다.
생활물가와 다른 공공요금이 다 올라도 대중교통 요금만은 굳건하다. 대중교통 요금 인상 권한을 가진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대한 버텨보겠다”며 당분간 택시·버스 등 대중교통 요금 인상이 없다고 못 박았다.
물가 상승 이슈가 당장 시급한 상황에서 십분 이해는 되지만, 마냥 박수만 칠 일은 아니다. 교통요금을 안 올리면 지금이야 지갑에서 돈이 덜 나가니 좋지만, 속으로는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아니 이미 생기고 있다.
서울 대중교통 요금은 수년째 그대로다. 서울시 대중교통 기본조례는 서울시장이 대중교통 요금의 적정 여부를 2년마다 분석·조정해야 한다고 규정했지만, 시민들에게 환영받지 못할 요금 인상은 말도 꺼내기 어렵다.
그 사이 대중교통 사업자들은 턱없이 낮은 요금을 감내하고 있다. 서울 지하철 요금은 수송원가의 절반 수준이다. 승객이 타면 탈수록 적자인 셈이다. 서울 지하철 운영기관인 서울교통공사의 적자는 연간 1조원을 넘었으며, 누적적자도 심각한 상황이다.
당장은 돈을 적게 내니 좋지만, 지하철 적자가 커지니 노후 전동차를 바꾸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적자에 따라 서울교통공사에 가해지는 구조조정이나 인력 감축 압박은 자칫 안전 분야 필수인력 감소와도 직결될 수 있다.
택시도 마찬가지다. 2019년 한 차례 인상했다지만, 여전히 선진국 대비 낮은 수준이다. 이래서는 택시기사들에게 안정적인 수입이 돌아가지 않는다. 예전에 택시기사하면 돈 잘 버는 직업으로 인식되던 시절이 있었다는데 이제 젊은 기사들은 더 잘 버는 배달·대리로 빠져나간다.
이러한 문제가 낳은 나비효과가 심야택시 대란이다. 서울 권역에서 심야시간에 택시를 잡아본 사람이라면 근거리에 살든 장거리에 살든 겪어봤을테다. 3~4배 요금을 내고 겨우 집에 왔다던가, 10km 거리를 걸어서 귀가했다는 무용담은 알고보면 대중교통 요금 동결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를 겪으며 젊은 택시기사 이탈현상이 가속화돼 법인택시는 기사 수가 줄고 개인 택시는 60대 이상 나이 든 기사가 주를 이뤘다. 나이 든 기사들은 안전한 주간근무를 선호하니 거리두기 해제로 심야 유동인구가 급증했는데도 심야시간 택시 운행대수가 대폭 줄었다.
그 사이 지하철 막차 운행시간도 한 시간 당겼다. 승객 수 감소가 원인이지만, 결국은 적자를 줄이기 위한 조치다. 지하철도 없고 택시도 줄어든 상황에서 귀가하는 시민들은 얼마 없는 택시와 새벽 늦게까지 싸우며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이후 버스 막차도 연장하고 택시도 추가 투입하고 다시 지하철 막차 운행시간도 늘렸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택시업계의 살림살이가 나아지지도, 지하철 적자 문제가 해소되지도 않은 채 물가 상승을 이유로 요금 동결만 선언한 셈이다.
물론 요금 인상이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지하철·버스·택시 등 시민의 발이 되는 교통수단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 역시 지자체의 주요한 책무다. 65세 이상 무임승차 부담을 해결하거나 요금제도를 탄력적으로 개편해 수요에 맞는 공급이 이뤄지도록 하는 정도는 논의해봐야 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얼마 전 공공요금 동결에 관해 “민생을 지원한다고 가격을 통제하는 것이 가장 나쁘고 열등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인상 요인이 있다면 인상을 하고 다른 방법으로 시민 부담을 줄이는 방법도 있을테다. 제2의 심야택시 대란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박용준 공동체팀장